The Foreign Press Noona Is Obsessed with Me

Chapter 92



이름만 떠올려도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것만, 눈앞에 장면이 심장을 찌르고 있었다.

하지만 남자는 자신이 떠올린 모습과 지금 보는 여성의 모습에서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눈앞의 여성은 기억 속 그녀보다 더 젊고, 더 앳되어 보였다.

남자도 깨닫고 있었다.

눈앞의 여성이 자신이 기억하는 이레아가 아니라는 사실을.

동일인물로 치부하기에는 이레아는 너무도 과거의 존재였다.

지금 그가 보는 장면보다 더욱 더 과거의 존재.

무엇보다 그녀의 죽음을 두 눈으로 보지 않았는가.

하지만 남자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눈앞의 여성이 이레아와 깊은 관계에 있음을.

그리고 자신과도 비슷한 관계에 있음을.

남자가 회상에 사로잡혀 있을 때에도 장면은 계속해서 진행되었다.

남자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장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20년이요?”

“네, 이 아이를 20년 동안 위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허허… 그러면 돈이 좀 많이 드실 텐데…”

그러자 여성은 한 손에 들고 있는 궤짝을 건넸다.

“이 정도면 될까요?”

원장은 궤짝을 받아 내용물을 확인했다.

그 안에는 수많은 금화와 귀금속이 섞여 있었다.

이에 원장은 헤벌쭉 웃으며 머릿속으로 계산을 시작했다.

이를 보고 있던 남자는 마나를 더 끌어올려 마법에 한 가지 효과를 더했다.

그러자 원장의 속마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복장을 보니 귀족은 아니…잠깐, 저 옷은 예전에 지방 귀족들 사이에서 유행하던…오호라, 몰락 귀족이었나?’

‘그렇다면 더 뜯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원장의 속마음을 읽은 남자는 치를 떨었다.

“이런 개자식이…!”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휘두른 남자는 또다시 통과하는 주먹에 이빨을 으드득 갈았다.

“흠흠, 돈이 살짝 모자랄 것 같은데요.”

원장의 말에 여성이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더 있습니다. 다만 그 돈은 상단에 맡겨져 있으며 매년 일정 금액만큼 이곳으로 가져 올 겁니다.”

원장은 속으로 혀를 찼다.

‘쯧, 영악한 년.’

“그래서 얼마나 되는지…”

“그 궤짝 두 개 정도입니다.”

원장의 볼살이 움찔거렸다.

머릿속에서 샘을 마친 원장은 헤벌쭉 미소를 지었다.

“하핳, 충분하겠군요. 어떻게, 차라도 한 잔 하시겠습니까?”

“아뇨, 저는 바로 가봐야 합니다.”

“이 추운 날씨에 어디를 가시겠다고…”

“제가 들어가면 이 고아원,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 버릴 겁니다.”

“네?”

“아무것도 아닙니다.”

“흠… 아이는 데려오셨나요?”

“여기 있습니다.”

여자는 품에서 아이가 든 작은 바구니를 꺼냈다.

그 바구니에는 갓난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눈을 꼭 감고 세상 모르게 잠들어 있었다.

“바구니 안에 거래서가 있습니다. 그걸 온 상단사람에게 보여주시면 돈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원장이 손을 뻗자 여성은 잠시 멈칫했다.

아이가 울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의 처지를 예상하기라도 한 건지, 아이는 힘껏 울기 시작했다.

이에 여성은 아이의 뺨에 손가락을 올렸다.

그러자 아이는 손가락을 잡고 언제 울었냐는 듯이 해맑게 웃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애틋하게 바라보던 여성은 이내 얼굴을 굳히며 손가락을 뺐다.

“여기 있습니다.”

원장은 아이가 든 바구니를 금송아지처럼 귀중하게 받들었다.

“상단에서 돈을 가져올 때에는 아이의 상태를 보여줘야 합니다. 아이가 안전하다고 생각해야지 돈을 내줄 겁니다.”

여성의 말에 얼굴을 잠시 찌푸린 원장은 그래도 자신이 이득이라는 생각에 다시 미소를 지었다.

“확인했습니다. 더 필요하신 것이라도?”

여성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부디 잘 길러주시길 바라겠습니다.”

“그럼요, 저희는 이 수도에서 가장 좋은 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걱정 마시길.”

“부탁드립니다.”

원장에게 고개를 숙여보인 여성은 무거운 발걸음을 돌렸다.

“조심히 가세요!”

원장의 말을 뒤로 하고 고아원을 나서는 여성.

이에 남자는 다급히 그 여성을 쫓아갔다.

고아원을 나선 여성은 주변을 살피더니 어디론가 급하게 뛰어가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는…

“허억…허억…허억……”

‘무언가’에게서 도망치고 있었다.

그 무언가의 정체를 예상한 남자는 있는 힘껏 소리쳤다.

“안 돼! 도망쳐!!!”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여성에게 닿지 않았다.

도망치는 여성의 뒤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길게 늘어지는 그림자는 그 형태를 짐작하기 어려웠으나 언뜻 보기에 개와 닮아 있었다.

그 그림자를 본 남자는 계속해서 소리쳤다.

“안 돼! 안 돼! 제발… 안 돼애!!”

그림자는 빠르게 여성을 따라잡았다.

마치 갈고리 같은 그림자가 튀어나와 여성의 발을 걸었다.

그림자에 걸려 넘어진 여성은 자신에게 드리워지는 어둠을 마주보았다.

결연한 표정으로 그림자를 쏘아보던 여성은 자신이 도망쳐온 고아원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아서…”

그림자가 아가리를 벌리고 여성에게 다가갔다.

“으아아아아!!!”

남자는 있는 힘껏 그림자를 향해 주먹을 날렸지만 그는 이 시간에 간섭할 수 없었다.

아니, 간섭할 수 있다고 한들 저 ‘사냥개’들을 물리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절망하는 남자에게 떨리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조님, 부디 우리 아이를 지켜주-”

덥썩

여성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우드득…콰직!

뼈와 살점이 짓이겨지는 끔찍한 소리가 들려왔다.

남자는 무릎을 꿇고 망연자실하게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곧이어 그림자에게서 들려오는 소리,

꿀꺽-

이내 그림자는 주변을 잠시 배회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버렸다.

그림자가 사라진 자리에 남아 있는 거라고는 푸른색 고름.

그 고름은 여성을 사냥한 괴물들이 남기는 일종의 증표였다.

남자는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깨닫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아기!’

있는 힘껏 땅을 박차며 달려나간 남자는 고아원으로 돌아왔다.

고아원은 거의 축제 분위기였다.

원장은 아끼던 술을 꺼내 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소리를 꽥꽥 지르며 춤을 추는 원장과 직원.

그 사이에 방치된 바구니에서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남자는 바구니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앙앙 울던 아이는 돌연 울음을 뚝 멈추었다.

그리고 눈앞을 직시했다.

그러자 남자는 아이와 눈을 맞출 수 있었다.

아이의 눈은 아름다운 회색 눈이었다.

그 눈에서 누군가를 떠올린 남자는 문득 자신의 뺨을 훑었다.

손에 물기가 묻어져 나왔다.

오랜 세월 동안 보지 못했던 눈물에 남자는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남자는 아이의 뺨을 눈물로 젖은 손가락으로 건드렸다.

그러자 놀랍게도 남자는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고, 아이는 해맑게 웃기 시작했다.

그 아이의 미소에 남자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그와 동시에,

쿠웅

공기가 진동하며 풍경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남자의 마법이 효력을 다한 것이다.

남자는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반드시 아카데미로 와라! 내가 너를 만날 것이다.”

들을 수 있을 리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남자지만, 그럼에도 그는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내가 반드시! 너를 지켜줄 것이다!”

아이는 남자의 말을 들었는지 아닌지, 그저 해맑게 웃고만 있었다.

그 아이의 미소를 마지막으로 남자는 현대로 돌아와 버렸다.

생명의 온기가 사라진 고아원 원장실.

남자는 멍하니 자신의 손끝을 바라보았다.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는 손끝.

남자는 그 손가락을 소중하게 품었다.

동시에 아이의 이름을 읊조렸다.

“…아서.”

자신의 이름이기도 하며 아이의 이름이기도 한 그 한 마디.

가슴을 울리는 따스함을 만끽하던 남자는 두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자신의 금발을 쓸어 올렸다.

자신을 부른 여성의 마지막을 떠올린 남자는 작지만 굳세게 말했다.

“걱정 마라. 너의 소원은 내가 반드시 이루어 주겠다. 내가 반드시… 그 아이를 지켜줄 것이다.”

남자의 두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으나, 그 두 눈은 어떤 때보다 밝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는 오래된 맹세를 끌어올렸다.

남자도, 총장도, 아서 카펜덜도 아닌, 그의 진정한 이름.

■■■ ■■

그는 자신의 잊혀진 이름에 대고 스스로에게 맹세했다.

“나, 아서 카펜덜은 나의 영혼과 이름을 걸고, 나의 후손 아서 카펜덜의 안위와 평화를 위해 모든 것을 다하겠다.”

말이 끝나자 밝은 빛이 삭막한 원장실을 비추었다.

이내 그 빛은 사슬로 변하여 남자의 몸에 칭칭 감겼다.

묵직한 그 사슬의 무게를 느끼며 남자는 중얼거렸다.

“반드시…”

—-

삐이이이이익!!

찻주전자의 날카로운 비명 소리에 총장은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달그락거리며 삑삑거리는 찻주전자.

손짓으로 주전자에서 물을 끌어올린 총장은 찻잔에 자신이 좋아하는 찻잎을 담고 물을 부었다.

찻잎이 뜨거운 물과 만나 우려지며 나는 향기가 그의 코를 간지럽혔다.

총장은 그 향기를 음미하며 회상을 통한 감상을 마무리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시간을 되돌려 당시의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을 돌린다고 한들 사냥개들에게서 그녀를 지킬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사냥개들의 표적이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남은 아이, 아서가 위험해졌다.

그는 방금 전 총장실을 나섰던 회색 머리의 소년을 떠올렸다.

“너만큼은 반드시 지켜주마.”

그리 다짐하며 찻물을 한 모금 마시는 총장.

“…앗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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