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77
아침햇살이눈을날카롭게찔렀다.
눈을찡그리며몸을뒤척이자부드러운무언가에팔이걸렸다.
동시에몸을멈춘나는천천히눈을떴다.
추측이맞아떨어져기뻐해야할까…
내팔은부드러운골짜기사이로들어가있었다.
‘뭐가어떻게되면이렇게되는거지…?’
팔을양쪽으로압박하는탄력에감탄하며천천히팔을빼냈다.
그리고눈을감고있는릴리스를찬찬히살폈다.
생각해보니오늘은내가릴리스를깨울차례였다.
입맞춤을위해다가가던나는이내움직임을멈췄다.
가만히있을때는몰랐다.
하지만이렇게움직여보니확실히이질감이느껴졌다.
내시선이아래로향했다.
‘하…분명자기전에도다녀왔었는데…’
여신님을깨우는건조금미뤄야겠다.
일단이것부터해결해야지.
나는행여나릴리스가깨어날까조심스레침대에서빠져나왔다.
옷장에서갈아입을옷을주섬주섬챙기고화장실로들어갔다.
‘어제일이너무자극적이었어…’
—-
처리를마치고잠에서깨기위해세수를하고있자니거울로시선이갔다.
정확히는거울속에서물기로번들거리는내입술로시선이갔다.
그러자어제의일이단편적으로떠올랐다.
천천히손을들어입술을매만졌다.
혹시부을까걱정했지만,다행히멀쩡한모습이었다.
어제의격렬한기억이계속해서떠올랐다.
술에취하면이런느낌일까.
장면보다그상황에서의감정이더세세히기억났다.
기억을되짚어보던나는이내내입술이멀쩡한이유를찾아낼수있었다.
시간이얼마나지났을까,열기로가득찬이불속에서시간을가늠하기란여간어려운것이아니었다.
어쨌든입술이아파올적,그걸눈치챈릴리스가움직임을멈췄다.
시작한이래처음으로떨어진거라거친숨이서로를향했다.
릴리스는잠시고민하는것같았다.
그리고내입술을손으로감쌌다.
다음순간,빛이릴리스의손에서흘러나왔다.
빛이가라앉을즈음, 내 입술은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그뒤부터는다시달라붙은릴리스덕분에기억이혼잡했다.
손에서흘러나온빛.
그때는워낙정신이없어서몰랐건만.
나는지금에서야그정체를깨달을수있었고,이에헛웃음을흘렸다.
‘맙소사,릴리스…회복마법을그런데다가쓰다니…’
모르긴몰라도어제나는상당히많은양의생명력을소모했을것이다.
‘식사’에이어서회복마법까지…
하지만나는전혀어지럽거나피곤하지않았다.
‘내생명력은도대체얼마나많은거지?아니면회복속도가빠른건가?’
어쨌거나다행인일이다.
적어도릴리스를굶길일은없을테니.
화장실에서나온나는아직도누워있는릴리스에게로향했다.
이불속으로기어들어가잠든릴리스를꼭끌어안는다.
따뜻한이불속에있는릴리스는극상의감각을제공해주었다.
그포근한느낌에순간잠들뻔한나는고개를저으며정신을차렸다.
뒷처리때문에시간이소모되었다.
자칫하면늦을수도있을시간.
나는릴리스의입을내것으로틀어막았다.
시간이없었기에바로입을벌리고입천장을핥아주기시작했다.
잠깐씩벌어지는틈사이로공기가빠져나가면서조금은야릇한소리가방을울렸다.
얼마지나지않아릴리스의혀가꿈틀거리며움직였다.
릴리스의눈꺼풀이천천히올라가며흑진주같은눈동자에내얼굴이비쳤다.
쪽
입술을땐나는속삭였다.
“좋은아침이에요,릴리스.”
그러자릴리스의눈꼬리가부드러운곡선을그렸다.
“좋은아침,아서.”
나른하게눈을뜨며대답하는릴리스에게짧게입을맞춘나는살짝심통부리듯말했다.
“만족했어요?”
뭘가리키는지는말하지않았지만그건우리둘다알고있으리라.
릴리스가방긋웃으며답하길,
“응!”
그밝은웃음에쏘아붙이고싶은마음이깔끔하게사라졌다.
결국나도웃음이터졌다.
한동안뒤엉킨채침대에서뒹굴던우리는시간이없음을상기한내요청으로일어날수있었다.
시간상아침은간단한샌드위치가되었다.
릴리스는샌드위치하나를내입에물려주었다.
“우물우물…두개정도챙겨주실수있어요?우물우물…가면서먹게.”
“응,알겠어.빨리나가자.”
아침을가면서먹는다는내판단은정확했다.
우리가교실에들어간직후,수업종이울렸다.
—-
나는수업에통집중하지못했다.
편지를보낸그빌어먹을…큼,사람이누구일까고민하고있었기때문이다.
‘언제넣은거지?’
‘점심시간에는없었어.릴리스와 ‘식사’를한곳이현관이었으니까확실해.’
‘그럼오후시간대에넣었다는소리인데…’
‘대략1시에서4시사이인가?’
‘글씨체…는처음보는거였어.’
‘편지에써진말투도특별할게없었고.’
‘종이재질!봉투와편지가같은재질이었어.따라서그둘은한세트겠지.재질이매끄러운게싸구려는아니었어.’
오전수업내내고민을이어갔지만더이상의단서는없었다.
‘단서가너무적네.이런걸로는범인을특정할수없어.’
‘…탐문이라도해봐야하나?’
어제일을그렇게자세히기억할사람이얼마나있겠냐마는,없는것보다야낫지않겠는가.
오늘 ‘공부’를마치고돌아가는길에기숙사옆방에물어봐야겠다.
-오늘도거기서먹을래?
-어?도시락있어요?
-그럼~수업시간에내가놀고만있는줄알았어?
-자고있던거아니었어요?눈감고계시던데.
-…사실 조금자긴했- 아무튼! 아공간내부에서염력으로요리를하면충분히가능해.
와우,그런것도가능하단말인가.
릴리스의힘에한계가어디일지가늠이되지않았다.
‘릴리스라면생명창조도할수있을것같아…’
어쨌든도시락이있다는것은좋은소식이었다.
어제의점심시간이떠오르자순식간에기분이좋아졌다.
하지만…
‘…어라?’
어제도시락을먹었던기숙사옆공원.
그곳에도착한나는머리가멍해짐을느꼈다.
그도그럴것이,눈앞에는전혀예상치못한광경이펼쳐져있었기때문.
-…이게다뭐야?
-…저도몰라요.
분명어제까지만해도한산한공원이었건만,어째선지공원은사람들로북적이고있었다.
도대체어째서…?
원인을생각하던나는이내공원의모습에서이상한점을찾아낼수있었다.
그저사람이많아졌다고생각했지만,그게아니었다.
‘설마……’
나는눈을깜빡이며다시한번공원을확인했고,이내확신할수있었다.
갑자기늘어난사람들,북적이는사람들.
틀린말은아니었지만,보다정확히표현하기위해서는한가지를바꿔야했다.
갑자기늘어난 ‘남자’들,북적이는 ‘남자’들.
그렇다.
공원내부를가득채우는사람들은대부분남자였다.
간혹보이는여자들이있기는했지만,극소수에불과했다.
압도적인성비를자랑하는공원.
이상황의이유는길게고민할것도없었다.
어제이공원에서보물이발견된게아닌이상,원인은하나밖에없었다.
‘이놈들이……’
-저희오늘은그냥기숙사안에서먹을까요?
-음…그러자.여긴너무복잡해.
-죄송해요,기껏도시락까지싸주셨는데.
-괜찮아,그리고방에서먹으면…
품에서불쑥튀어나온릴리스의앞발이내입술을눌렀다.
–남들시선신경쓸필요도없어지잖아?
분명내가보고있는건고양이일텐데,요염한미소를짓는릴리스의얼굴이보이는건어째서일까?
-어제그렇게했으면서또하고싶으세요?
-마음같아선평생하고싶은데?
-……좀 봐주세요.
-후훗,오늘하는거봐서.
결국오늘은방에들어가서점심을해결하게되었다.
물론릴리스의말대로다른사람의시선을신경쓸것도없으니,밖에선하지못할스킨십도거리낌없이했다.
릴리스가벌꿀술을머금고입을맞춰올때얼마나아찔했던지…
오후수업은오전과마찬가지였다.
내가잊은단서는없을까.
어제의상황을수십번을되짚어보며하나하나기억해냈다.
그리고기억해낼수록가슴속응어리진감정이크기를더해갔다.
마침내수업이끝나고,도서관으로향하던나는도서관입구를앞두고발걸음을멈췄다.
-투명마법부탁해도될까요?
그렇게말한나는빠르게덧붙였다.
-저희둘다투명해지게요.
-뭐?
-부탁해요.
-…알겠어.
릴리스와내주변이잠시일렁거렸다.
-소리도차단해주세요.
-갑자기왜그래?
다시한번일렁이는공기.
-됐어.이제바깥에선우리소리를못들을거야.
-인간모습으로돌아와주세요.
-…알겠어.
순식간에원래의모습으로돌아온릴리스.
“이제 말해 봐. 갑자기왜-”
릴리스는말을잇지못했다.
그도그럴것이,
츕…
그녀의입술을내입술로틀어막았기때문이다.
시야의한구석으로학생들이도서관을들락날락거리는것이보였다.
투명한장막하나만을사이에둔거리.
자칫들킬지도모르는상황이었지만나는그런것따위생각할겨를도없이릴리스의입술을탐했다.
기나긴입맞춤이끝나고,숨을고르던나는릴리스에게속삭였다.
“사랑해요.”
“…갑자기왜그래?”
“그냥…이대로헤어지기아쉬워서요.두시간동안공부할힘도얻을겸.”
“후훗,그러고보니오늘은바쁘게나오느라현관에서힘내라고키스못해줬네?”
릴리스는달콤한숨결을후우,내뱉으며속삭였다.
“힘내,화이팅……츄릅…”
다시입술이겹쳐지며온몸이찌릿거렸다.
그렇게한동안서로를꼭끌어안고있던우리는어느순간,약속한것처럼동시에몸을떨어뜨렸다.
“가볼게요.”
“공부힘내,아서.”
“고마워요.”
“응,기다리고있을게.”
아쉬운마음을뒤로하고도서관으로향하려던나는문득무언가를떠올리며발걸음을멈췄다.
“릴리스.”
“응?”
“혹시나해서말씀드리는건데요……투명해져서저따라다니시면안돼요.”
움찔.
‘하아…역시나.’
그냥갔으면큰일날뻔했다.
“약속해줘요,릴리스.기숙사에서기다려주기로.”
“으으…”
“자요,손가락.”
새끼손가락을내밀자우물쭈물하며갈등하는릴리스.
이윽고한숨을내쉰릴리스는손가락을걸었다.
“약속할게.대신너도그뱃지떼지마.알겠지?”
릴리스는내교복칼라에있는하트뱃지를가리켰다.
“그럼요.약속할게요.”
“…도장.”
시간상릴리스의입에짧게입을맞춘나는빙긋웃으며도서관으로걸어갔다.
“진짜갈게요.”
“잘다녀와~”
“넵!”
릴리스에게손을흔들어보인나는그대로도서관으로들어갔다.
사서쌤께인사를하며서가로들어가사람의시선에서벗어난그순간,
“흐읍…”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로 인해 비틀거리다 간신히 책장에 기댈 수 있었다.
가슴을찌르는허무함과죄책감에눈물이나올것같았다.
‘죄송해요,릴리스.’
릴리스에게정면에서거짓말을한것은처음이었다.
마음먹고하니나자신도놀랄정도로표정관리가잘되는스스로가두려웠다.
떨리는다리를딛고자리에서일어났다.
‘마음굳게먹어야해.그놈에게죄를묻기위해서는…’
나는서가에서대충커보이는책한권을뽑아들고,사람의시선이잘닿지않는구석진자리에가서앉았다.
책을펼쳐책상위에올려둔나는조심스레주머니에손을집어넣었다.
몇번손을휘저은나는목표로하던것을잡아천천히빼들었다.
주머니에서나온것은검은색표지의불길한책.
표지를한장넘기자보이는날카로운필기체.
-네크로노미콘
저번에릴리스가던져두었던것을몰래챙겨두었었다.
릴리스에게한말은부분적으로보면사실이었다.
스스로나아지고싶어서혼자서노력해보고싶은것도사실이었으며,
그수단으로공부를고른것도사실이었다.
하지만결정적으로다른것은,그공부가평범한공부가아니라는것이다.
잠깐망설이던나는책장을빠르게넘겼다.
이내내가목표로하던소제목이눈에들어왔다.
5. 흑마법
심호흡을한나는페이지에집중하며내용을천천히읽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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