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76
릴리스는침대에앉아그녀의약혼자를기다리고있었다.
방금전그녀는예상치못한일에우울해진아서를위해자신의넓고풍만한(?)마음으로그를품어주었다.
‘후훗,마음에들었나보네.’
그의눈빛만봐도알수있었다.
뜨거운 감정을 담아 자신을바라보는그눈빛.
당장이라도덮쳐서-
‘…씁!정신차려!아직은참아야해,아직은…’
정신을다잡은릴리스는마침화장실문이열리자밝은미소와함께달려갔다.
“아ㅅ……응?”
릴리스는달려가던움직임을멈췄다.
화장실에서나온아서는뭔가달랐다.
분명표면적으로는달라진게없지만,뭐랄까…평소의아서와는이질적인분위기가풍겼다.
조금날선것같은…
어쨌거나그녀가예상하던모습이아니었다.
“아서?왜그래?무슨일있어?”
걱정스러운릴리스의물음에힘겹게고개를들어올리는아서.
아서와시선을맞춘릴리스는뭔가잘못되었음을느꼈다.
그러나아서는평소처럼부드럽게입꼬리를올렸다.
“저녁뭐먹을까요?”
그자연스러운물음에릴리스는말문이막혔다.
그런릴리스에게쪼르르달려가안기는아서.
“저배고파요,릴리스.”
배시시웃으며말하는아서는겉으로보기에는평소와다를것이없었다.
늘그렇듯귀엽고사랑스러운그녀의계약자이자약혼자였다.
하지만외신의전지적인힘때문일까,혹은여자의감때문일까.
릴리스는아서가조금달라진것같다고느꼈다.
그러나그건그거고이건이거.
아서가배고프다고말하는데거절할릴리스가아니다.
“조금만기다려줘,기운차리도록내가힘써볼게.”
싱긋웃어보이는릴리스에게까치발을들어짧게입을맞추는아서.
“고마워요,릴리스.”
부엌으로향하는릴리스의뒤로,아서의시선이따라갔다.
문득아서는거실에있는거울을바라보았다.
그리고그거울에비친아서는…
“……”
—-
릴리스에게는 말할수 없었다.
아니,말하고 싶지 않았다.
릴리스에게말한다면당장이라도그편지를쓴사람을찾아가죽음에가까운형벌을내릴것이다.
루이스에게그러했던것처럼.
하지만이번 일은명백히나를겨냥한도발이다.
그걸무시하고곧장릴리스에게일러바치기에는…
‘내손으로처리하고싶어.’
이번만큼은릴리스의손을빌리고싶지않았다.
오로지내힘으로, 그 편지를 보낸 사람을처리하고싶었다.
게다가 편지의내용물을절대로릴리스에게보여주고싶지않았다.
그내용물을떠올리기만해도열불이치솟으려했다.
감정을삭히기위해릴리스가있는부엌으로향했다.
검은불로재료를이리저리볶고있는릴리스를뒤에서껴안았다.
저번일을참고삼아,가능한한숨결이닿지않도록조심했다.
까치발을들어릴리스의어깨너머를바라보았다.
“무슨요리예요?”
“파스타를해볼려고.”
“오,무슨파스타인데요?”
“그건비밀~”
내쪽을돌아보는릴리스의볼에입을맞췄다.
그러자배시시웃는그녀의모습에가슴이따뜻해졌다.
이렇게따스하고부드러운감정이불같은감정을억누를수있다는것은참으로신기한일이었다.
덕분에감정의불이잦아들었지만,완전히꺼지지는않았다.
‘과한분노는좋지않아.머리는차갑게,냉정하게둬야지.’
열이빠진머리가빠르게돌아갔다.
그러자순식간에세워진계획.
우선은릴리스에게허락을받아야했다.
요리가완성되고,식탁에앉은내앞으로파스타그릇이놓아졌다.
“자~먹자!”
“잘먹겠습니다.”
눈앞에파스타는딱히특별한점이눈에띄지는않았다.
다만릴리스가재료를숨긴걸로봐서는특별한무언가가들어갔겠지.
초롱초롱잔뜩기대하는눈으로옆에서바라보고있는게,내반응을기다리는모양이다.
포크로파스타면을돌돌감아한입에넣자,
‘…맙소사.’
“어때?맛있어?”
“…릴리스.”
“응?”
“파스타에도대체 뭘 한겁니까…”
고개를푹숙이고손을떨며말하자,긴장어린릴리스의목소리가들려왔다.
“으,응?무슨문제있어?간이안맞기라도해?”
이에나는,
쪽
기습적으로고개를들어릴리스에게입을맞췄다.
귀엽게도눈이휘둥그레지는릴리스.
“너무맛있어요.”
“으읏!놀랬잖아!”
내팔뚝을찰싹때리는릴리스지만,얼굴에걸린미소가보기좋았다.
그렇게즐거운식사를이어가던도중,나는잠시포크를내려놓았다.
릴리스의눈치를흘낏보며천천히입을열었다.
“저…릴리스.”
“응?마실거줄까?”
“아뇨,그게아니라…”
이내마음을강하게먹은나는릴리스와눈을맞추고말을이었다.
“저…공부좀해도될까요?”
“응?공부?”
“네,이제중간고사가얼마남지않아서요.”
그러자고개를돌려달력을바라보는릴리스.
달력에는학사일정이전부기록되어있었다.
달력을보던릴리스가고개를갸우뚱기울였다.
“아직한달넘게남아있는데?”
“저는원래두달전부터공부를시작했었거든요.”
실기를못보던나는반드시필기점수로승부를봐야했다.
중간이끝나면기말준비,기말이끝나면다음학기중간준비,마지막기말이끝나면또그다음년도중간준비…
그런식으로끊임없이시험공부만주구장창하던나였다.
…물론지금은목적이조금달라졌지만.
“알겠어,간식은뭐먹을래?초콜릿?아,공부는책상에서할거야?아니면침대에서?”
릴리스는내가방에서공부할것을전제로말하고있었다.
그래,릴리스라면당연히저렇게말할줄알았다.
하지만…
“…릴리스.”
정말…정말마음아픈일이지만,
나는그기대를산산이부숴야했다.
“저혼자서공부하고싶어요.”
“………뭐?”
—-
릴리스는자신의귀를의심했다.
지금아서가뭐라고한거지?
혼자서?
지금혼자서라고한거야?
혼자서공부하겠다고한거야?
나는…?
왜?
왜?
왜?
릴리스의굳은표정을본아서는천천히입을열었다.
“저도릴리스와떨어지고싶지않아요.”
“그럼-”
“하지만릴리스가옆에있으면…도저히집중할수있을거같지않아서…”
이건의도를떠나서명백한사실이었다.
순수한의도로공부를한다고해도옆에릴리스가있다면아서는집중하지못할것이다.
곁에있으면계속보고싶고,대화하고싶고,
뭐…그렇고그런생각도날것같고.
“하지만…”
말을잇지못하는릴리스.
그런릴리스를바라보던아서는자신의손을릴리스의손위에겹쳤다.
“그거알아요,릴리스?아카데미는기숙사를성적순으로배정해줘요.그리고이번중간고사이후에기숙사가재분배된다고해요.매번실기를망쳐서가장작은기숙사인이곳에있었지만이번에는…”
그의뒷말을이해한릴리스가떠듬떠듬말을내놓았다.
“실기를잘봤으니까.이번시험에좋은성적을얻으면…기숙사가좋아진다?”
“네,정확해요.”
“…좋은기숙사를위해서성적을잘받겠다고?”
“겸사겸사죠.상상해봐요,릴리스.지금보다방도더커지고,침대도더커지는거예요.지금침대는둘이눕기에는좀좁은감이있으니까마침잘된거죠.”
“…꼭껴안고자면문제없잖아.”
그건그렇죠.
당연하지만릴리스는전혀받아들이지못했다.
애초에이건반쪽짜리도안되는포장지에가까웠다.
아서는그내용물을입에담았다.
“솔직히말하자면,릴리스의도움없이노력해보고싶어요.”
“…왜?”
이에아서는멋쩍은듯시선을살짝돌리며대답했다.
“…자존심때문에요.”
“뭐?”
“그거알아요,릴리스?저는말이죠…”
말끝을흐린아서는릴리스의뺨에손을올렸다.
따뜻한뺨을쓰다듬은아서가말을잇는다.
“릴리스가너무좋아요.”
갑작스러운말에릴리스의얼굴이빨갛게달아올랐다.
“가,갑자기?!”
“네,좋아해요.”
“흐으으…”
부끄러움으로고개를돌리려는릴리스의뺨을붙잡아,다시시선을맞춘아서는이어서말했다.
“좋아하니까.가끔은힘들때가있어요.”
“……어?”
릴리스의심장이철렁내려앉는것같았다.
힘들다니,내가아서한테뭘잘못했나?
딱딱하게굳은릴리스의표정에서그런생각을읽어낸아서가빠르게말을이었다.
“릴리스가저에게못해줬다는게아니예요.앞서말했듯이제자존심의문제죠.”
아서는릴리스의뺨을천천히쓰다듬었다.
“누군가의도움이없으면아무것도못한다는것,심지어그누군가가마음속깊이좋아하는사람이라는것,그런사실이제마음을계속심란하게만들어요.”
이건현재의의도와는별개로예전부터가지고있던아서의진심이었다.
릴리스의도움으로많은것이변화한것은사실이지만,그것에과연내지분은얼마나있을까?
그리고만약릴리스가없다면나는뭘할수있지?
그렇게생각하자아서는마음속어딘가가불안해지는것이었다.
“물론릴리스가좋은의도로저를도와주고있다는거알고있어요.지금제가내세우는건유치한자존심일수도있어요.”
하지만,이라고아서는말을이었다.
“릴리스,저는조금더성장해보고싶어요.더성장해서릴리스옆에당당히서보고싶어요.그래야…저는저스스로를인정할수있을것같아요.”
아서는릴리스의손을맞잡았다.
“제가릴리스를부담스러워한다,그런말이아니예요.이건제가릴리스를더좋아하기위한노력이에요.그러니…”
릴리스의손을꼬옥힘주어잡은아서는릴리스와시선을맞췄다.
“제억지좀들어주시면안될까요?”
아서의질문에릴리스는침묵했다.
여태껏아서를위해열심히노력해왔다고생각했건만,자신의노력이아서의노력을막고있었을줄은상상도못하고있던그녀였다.
솔직히마음같아서는…아서를평생자신의곁에두고싶은릴리스였지만,만약그것이아서의길을막는행위라면,그로인해아서가잠깐이라도불행해진다면…
릴리스는결단을내렸다.
그와떨어진다고생각하자마음이끊어지는것같았지만…
“…알겠어.”
“고마워요,릴리스.”
기쁘게미소짓는아서를보자릴리스도입꼬리가올라갔다.
그래,아서의미소를지키기위해서라면릴리스는뭐든할수있었다.
하지만그럼에도가능한한아서와붙어있고싶은릴리스였기에,
“…그럼얼마나할거야?”
라고물어보고말았다.
아서는잠시고민했다.
목표를이루기위해서시간이필요한것은맞았으나,그도릴리스와의시간을포기하는것은매우아쉬웠다.
“음…수업끝나고저녁때까지.2시간정도요.”
릴리스도그정도면적당하다고생각했기에고개를끄덕였다.
“어디서할건데?”
“도서관이요.아,가끔은교수님께질문하러갈수도있겠네요.”
“…도서관앞까지배웅정도는해줘도되지?”
“그럼요,오히려안해주면섭섭할것같은걸요?”
“언제부터할거야?”
“내일부터요.”
“…알겠어.”
그렇게약속한둘은미뤄두었던식사를재개하기위해식탁으로몸을돌렸다.
그러자,
“아…”
“아…”
그들의앞에는퉁퉁불어버려두께가1.5배정도는부풀어오른파스타가있었다.
“…다시해줄까?”
릴리스의물음에아서는고개를저었다.
“괜찮아요.지금은그것보다더중요한게있어서요.”
“응?아직잘려면시간이많이남았는데?”
“아뇨,자는거말고…”
말끝을흐린아서는기습적으로움직여릴리스와입을겹쳤다.
짧게끝나는입맞춤이아닌,보다본격적인키스.
“츄릅…츕…츕…파하……갑자기왜…?”
릴리스의물음에아서는부드러운미소를지으며답했다.
“답례에요.억지들어준답례.”
“굳이답례까지는-”
“오늘하루남은시간동안릴리스가원하는만큼식사…”
말을끊은아서는고개를저었다.
지금만큼은포장하고싶지않았다.
“키스해드릴게요.”
아서의말이떨어지기가무섭게,
깜빡
아주잠깐,기숙사방안에불빛이깜빡였다.
빛이사라졌던그순간,눈깜짝할사이에아서의눈앞에도달한릴리스.
“진짜?진짜원하는만큼해줄거야?”
줄줄이흐르는붉은안광에아서는군침을꿀꺽삼켰다.
“어…정정할게요.자기전까지만이요.”
“충분해.”
아서를번쩍들어올린릴리스는그대로침대로향했다.
마법으로이불을들어올린릴리스는아서를껴안은자세그대로침대에쓰러지듯누웠다.
이불이다시내려와둘을감쌌고,어둠이아서의시야를덮었다.
이불로생긴어둠너머로,릴리스의붉은안광이번쩍였다.
“하아…하아…씁……”
어둠너머에서들려오는거친숨소리.
그모습에아서는자신의발언이살짝후회되기시작했다.
‘잘못건드린건가…?’
잠깐사이에이불속을가득채우는릴리스의달콤한향기.
아서는자신도모르게그향기의진원지를향해다가갔다.
릴리스의숨결이콧끝을간지럽힐적,
어둠속에적응된아서의눈이눈앞의상황을인식했다.
붉은안광을흘리며자신을뚫어져라쳐다보는눈,입가에서주체없이흘러내리는침.
그모습은마치인간을유혹하는악마처럼고혹적으로보였다.
아서는천천히손을뻗어릴리스의입가를훑었다.
“아깝게왜흘리고계세요…”
끈적해진손가락을입에넣은아서는달큰한릴리스의타액을빨아들였다.
“이렇게달콤한걸…”
그모습을두눈을부릅뜨고바라보는릴리스.
아서는그런릴리스의반응을머릿속에새기며릴리스의뒷목에팔을둘렀다.
“흘리지말고저한테주세요.”
천천히다가간아서는릴리스의입술을앞두고작게속삭였다.
“사랑해요.”
그말을신호로격렬한파도가아서를덮쳤다.
그렇게장장3시간.
꿈틀거리는이불속에서들려오는빨아들이는소리,질척거리는물소리,그리고간간이들려오는녹아내리는듯한목소리가어두운방을울렸다.
“사랑…츕….해….츄르릅….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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