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75
점심시간으로에너지를충전한(따지고 보면 에너지를빨린거지만)나는오후수업에는열심히참여했다.
아카데미에남기위해치열하게공부하던때처럼두눈을번뜩이며수업을들었으며,교수님들의질문에도손을들어답했다.
교실을이동할때면사람들의시선이,특히남학생들의시선이뜨거워좀불편하긴했지만빠른걸음으로돌아다니니그래도참을만했다.
그렇게오늘하루마지막수업을앞둔그때.
“아서,나좀볼수있을까?”
나를부르는어딘가익숙한목소리에고개를돌려보니,
“일리나?무슨일이야?”
학년수석,일리나프로스트가내곁에서있었다.
분명나와겹치는수업은아닐텐데,여기에는무슨일이람.
“신입생환영회가내일모레에열려.”
“아,슬슬할때가되긴했지.”
신입생환영회.
말그대로새로들어온신입생들을환영하는조촐한파티…였는데.
최근에와서는의미가조금달라졌다.
신입생들을환영하긴하지만,뭐랄까…좀기강을잡는다고할까.
아카데미,그것도황립아카데미에들어올정도면어지간히강하거나머리가좋아야한다.
아니면둘다거나.
대부분은강한축이었다.
나처럼머리만좋아서들어오는게이례적인거지.
그런데가끔,머리가덜여문사람이신입생으로들어오기도했다.
각자의고향에서한가락한다소리를듣는아이들이다보니,자신이세상에서가장잘난줄아는신입생들이매년꼭있었다.
그런싸가지없는신입생들을뿌리뽑고자,몇년전부터신입생환영회에는이상한룰이추가되었다.
하지만뭐…나에게는상관없는이야기였다.
내가신입생때는선배들에게개기기는커녕파티장구석탱이에서쭈구려음료만홀짝이고있었다.
2학년이던작년에는1학기중간을대비해야한다는이유로,나를끌고가려던레티를때어놓고방에틀어박혀있었다.
이번년도에도딱히갈생각은없었는데…
‘근데일리나가그얘기를왜꺼내지?’
의아해서바라보고있자니일리나가계속해서입을열었다.
“단도직입적으로말할게, 아서 너는 필참 인원으로써 모레에 있는 신입생 환영회에 반드시 참석해야 해.”
…이건또무슨말이야?
“어… 뭐라고?”
“신입생환영회에룰은알고있어?”
나는고개를저었다.
“자세히는몰라.”
“필참인원에대해서는알고있어?”
나는 또다시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필참 인원이라는 말 자체를 일리나에게 처음 들었다.
“필참인원에는학생회인원은물론이고,학년수석과차석,성적우수자들이포함돼.”
“그럼너와루크는필참이겠네?”
“맞아.그리고너도.”
“…그러니까 왜?”
“성적우수자는전체성적만으로정하는게아니야.전체성적우수자는물론이고,작년도각학기실기평가우수자도포함돼.그리고아서너는,”
일리나가검지로나를가리켰다.
“작년2학기실기평가수석이거든.”
“…하?”
……내가뭐요??
황당한마음을담아서바라보자일리나의눈썹이살짝올라갔다.
“몰랐나보네?”
“…내가수석이었다고?”
전혀모르고있었다.
그도그럴것이나는시험이끝난직후,루이스에게심장을관통당해사경을헤매고있었으니까.
깨어나보니방학이시작되어서결과를전달받지못했었다.
“학생들을한곳으로몰아안전한장소를만든판단,싸움에서도기발한작전으로적을섬멸하는데에결정적인도움을준지성.네가없었다면우리는균열에서탈출하기힘들었을거야.그런걸생각하면수석일만하지.”
얼떨떨한기분이었다.
매번실기평가에서가장먼저탈락하기일쑤였던내가수석이라니…
“아무튼,너는필참인원이라반드시환영회에참석해야해.”
이번에도빠질생각이었건만,아쉽네.
“주의사항같은게있을까?드레스코드라던가.”
“복장은자유롭게.사복이든교복이든상관없어.격식만차리면돼.다른주의사항같은건도서관에가봐.선배님들이만들어놓은자료가있어.”
“알겠어,알려줘서고마워.”
“그럼…참,가장중요한거.”
근엄한표정을지음과동시에내게거리를좁히는일리나.
품속에서릴리스가하악거렸지만아랑곳하지않고가까이다가온일리나는목소리낮춰서말했다.
“신입생들한테얕보이지마.그리고가능하면네패밀리어도챙겨오는게좋을거야.”
기죽이기라더니설마싸움이라도하는걸까?
“…알겠어.”
“그럼모레에보자.”
말을마친일리나는몸을휙돌리더니당당한발걸음으로교실을빠져나갔다.
그런일리나의뒤를수많은시선이따라갔다.
학년수석이라는자리와신비로운청은발.
일리나는본인은모르겠지만이미학생들사이에서많은인기를끌고있었다.
-…이것참.이번에도뺄생각이었는데아쉽네요.
방에서릴리스랑놀고싶었건만.
-어쩔수없지,뭐.그보다파티라고했지?
-네.
품속에서고개를든릴리스가나와시선을맞췄다.
-그럼턱시도입어야겠네!
-…예?
-파티하면턱시도지!
턱시도라니,불편해보이는옷말이야?
-어음…저는그냥교복입고가도-
-안돼!내남자가다른인간들에게무시당하게내버려둘수는없어.가장멋있게하고가야지!
눈빛을보아하니말린다고말려질것이아니었다.
나는지친움직임으로고개를주억거렸다.
-수업끝나고잠시도서관에들려야겠어요.
-자료더찾아보려고?
-네,적어도어떻게진행되는지는알고가려고요.
그래,릴리스말이맞았다.
이왕가는거,적어도무시당하지는말자고.
—-
그렇게수업이전부끝난시간,나는도서관으로향했다.
도서관에들어가려던나는갑자기떠오른생각에발걸음을멈췄다.
-왜그래?무슨문제있어?
문제라면문제랄까…
나는품속에릴리스를내려다보았다.
-…도서관에는동물출입금지예요.
-앗…
털을청소하는것도문제였고,정신사나운동물들이시끄럽게하거나책을훼손시킬까봐만들어진규칙이다.
나는유리로된도서관문너머로사서쌤을힐끔쳐다보았다.
규칙과는별개로사서쌤은동물알레르기가심한걸로알고있었다.
만약릴리스를데리고간다면바로알아차리실텐데…
-릴리스혹시…털안날리게할수도있어요?
-그럼당연하지.
-어?돼요??
혹시나해서물어본건데,이게된다고?
-…아서.여태껏내털이돌아다니는거본적있어?
-어…?그러고보니..
.
그렇게껴안고다녔건만,내교복에는까만고양이털이라고는눈씻고도찾아볼수없었다.
-내털은절대빠지지않아.
세상에이런마법이있었다니…
레티는고양이랑잠깐놀고왔는데도옷이털옷으로바뀌어있던데.
세상에서가장키우기쉬운고양이는마법쓰는고양이아닐까?
-투명해질수있어요?
-알겠어.
릴리스는눈을꼭감더니잠시뒤도로떴다.
-됐어.
나는릴리스를품에쏙넣어서겉옷을여몄다.
겉옷단추를채우자얼굴만빼꼼내민상태로매달리게된릴리스.
마치아기를품은것같아서기분이묘했다.
그렇게릴리스를품은채로도서관에들어갔다.
사서쌤이나를보더니고개를끄덕이셨다.
마주인사를했지만,사서쌤은내품에있는릴리스를전혀눈치채지못하시는것같았다.
그렇게사서쌤을지나쳐아카데미관련서적들을뒤적거리던나는마침내일리나가말해준자료를찾아낼수있었다.
-여깄네요.아카데미신입생환영회의룰.
책장을넘기자목차없이바로글이나왔다.
-드레스코드:턱시도나파티드레스같이격식있는복장,하지만교복도가능.
-역시턱시도야!
-쩝..
.
결국턱시도를입긴해야겠다.
-순서는매번달라지긴하지만어쨌거나대략적으로는비슷하다.
신입생대표의인사와재학생대표의화답.
신입생대표는입학시험의결과로정해지며,재학생대표는학생회장이다.
그뒤로파티가이어진다.
한가지특이사항으로는,
-여깄다.
-신입생기죽이기.
재학생선배들과신입생들이대련을벌인다.
선배들과의격차를실감하게하여기강을다지기위함이다.
‘아니,파티하다말고갑자기싸운다고?’
자료를마저읽어본나는충격에휩싸였다.
-신입생들은재학생들중에서원하는사람을지목하여대련을할수있는데,아무나지목할수는없다.
지목가능한대상은재학생들중 ‘성적우수자’로한정된다.
만약지목된다면그둘은환영회가벌어진그주토요일,오전수업이끝난후에대련을벌인다.
-성적우수자라하면……
-어라,그거너아니었어?
나는머리를싸쥐며신음을흘렸다.
“으으으……”
필참인원이라는게나가서싸우라는말이었어?
‘미치겠네,정말……’
—-
“으어어…”
-…괜찮아,아서?
-네…아뇨…네…
-안괜찮네.
-아니,필참이라고하길래무슨상이라도주는줄알았는데…갑자기싸우라는게말이돼요?
-그래도지목안당하면되지않을까?
-제발아무도지목안했으면…
그나마다행인것은대부분의신입생들은2학년까지만지목을한다는것이다.
3학년이나4학년은웬만해서는건들지않는다고.
하지만만약이라는것이있으니…
도서관에서나온나는터덜터덜힘없는발걸음으로기숙사를향했다.
‘어째서 내게 이런일이…’
-걱정마,만약지목당해도내가날려버릴테니까.
-…고마워요,릴리스.
품속에고양이를꼭껴안은나는조금나아진기분으로방문을열었다.
동시에내품에서그대로인간으로돌아온릴리스는고양이였던자세그대로나를껴안았다.
문제는…
“커흡…”
끌어안고있는자세그대로커졌다보니무언가가내얼굴을강하게압박해왔다.
“리,릴리스…잠깐만요…!”
땅으로비유하자면릴리스의몸은결코판판한평지가아니다.
젖과꿀이흐르는굴곡진산맥에가깝지.
그런산맥이순식간에다가와안면을누른다고생각해보라.
…솔직히나쁜기분은아니었지만.
“어머,미안~”
몸을살짝떨어뜨린릴리스는음흉한눈빛으로나를내려다보았다.
“저…릴리스?”
“응?”
“비켜주셔야움직일것같은데요.”
다시말하지만 ‘살짝’ 떨어진상태다.
조금만움직여도닿을거리.
시야를가득메우는깊은골짜기때문에정신이날아가버릴것만같았다.
그신성한공간에내숨결이닿을까숨을참아가며릴리스를올려다보았다.
릴리스는뭔가…상당히나쁜계획을생각하는듯한표정을하고있었다.
“…릴리스?”
“숨한번크게들이셔볼래,아서?”
“?”
의아했지만어쨌거나릴리스의말이니숨을크게들이쉬었다.
그러자,
“에잇!”
꾸욱…
“우읍?!”
돌연릴리스가몸을앞으로밀어붙였다.
눈앞을가리던두산맥이나를감싸며골짜기사이로내머리가들어갔다.
‘커헉!이무슨감촉…!’
매일서로끌어안은자세로잠에들었기때문에가끔얼굴을묻은자세로잠에서깬적도있지만,이렇게대놓고한적은처음이었다.
이세상것이아닌게아닐까의심되는부드러움이느껴졌다.
장난치듯만지게해줬을때와는또다른느낌.
사방에서가해지는압박감에정신이아득해지는것같았다.
‘…이대로라면 숨 막혀 죽어도좋지않을까…아니,나는사실이미천국에와있는게아닐까?’
라는생각이들정도였다.
숨이부족해서인지,아니면부끄러워서인지,머리가어지러워질듯한그때.
“자,끝~”
“푸하아!”
산맥이물러나며골짜기에서벗어난나는숨을크게들이쉬었다.
“쿨럭쿨럭!”
비어버린폐에갑자기숨이들어가자기침이나왔다.
그런내게릴리스가입을맞추었다.
벌려진입을통해적당한양의산소가들어왔다.
자신의숨을나눠주는상냥한입맞춤.
릴리스에게산소를나눠받던나는호흡이진정되자그녀에게서떨어졌다.
“뭐,뭐예요?대체!”
갑자기이게무슨일이지?
너무도 갑작스러운 일이라 놀란 나머지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런내게웃으며말하는릴리스.
“기분전환좀하라고.도서관에서나온이래계속꿀꿀한표정이었잖아.”
“그렇다고그…그런…!”
“어머,왜말을못할까?”
“읏…”
황당하다는듯이바라보고있자니작게속삭이는릴리스.
“어때,기분전환은확실히됐지?”
“……”
너무완벽하게돼서할말이없다.
내표정에서답을들은릴리스는해맑게웃으며거실로향했다.
“저녁먹기까지는아직시간많으니까좀씻어~”
“…네에.”
힘빠진목소리로대답한나는터덜터덜화장실로향했-
‘응?이게뭐지?’
현관바닥에뭔가떨어져있었다.
자세히보니편지를보낼때나쓰는종이봉투였다.
‘나한테편지가?레티가보낸건가?’
“아서?거기서뭐해?”
릴리스의부름에일단편지를주머니에쑤셔넣은나는그제야현관을벗어나화장실로향했다.
우선…
뒷처리가필요했다.
—-
손을씻으며멍하니거울을바라보던나는주머니속편지가떠올랐다.
손을대충옷에닦은나는주머니에서편지를꺼냈다.
이리저리뒤집어봤지만누가보냈는지는써있지않았다.
“…애초에편지가오면기숙사편지함에넣을텐데?왜여기있지?”
의문투성이었지만,어쨌거나열어보면알게되리라.
편지를열어보자두장의종이가들어있었다.
하나는찢어진신문…인것같았고,하나는편지같았다.
나는내용물을하나하나찬찬히살펴보았다.
그리고…
“…하?”
내용물을뚫어져라쳐다보던나는이내,
쫘악!쫙!
그것들을갈기갈기찢어버렸다.
찢어진종이를쓰레기통에쳐박은나는가슴아래쪽부터끓어오르는열기를가라앉히기위해애썼다.
하지만결국,
쾅!
세면대를거세게내려친나는억눌린목소리로으르렁거렸다.
“…어떤 빌어먹을 새끼가 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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