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8
블루피스고아원.
내가20년이라는세월을보내온곳.
분명나를여태껏키워준것은맞으나,정작나는그때의기억을떠올리면화부터났다.
높다란철창으로사방이막혀있는소름끼치는건물.
최소한의돌봄과간단한규칙을만들어주곤사실상방치를선언한운영진.
그나마외부에서손님이올때면아이들을통제하는 ‘척’만했다.
국가에서나온지원금은도대체어디로써먹는지,음식은희멀건죽만나오고,선을넘는다치면아이들을무려독방에가둬버리는미친방식.
그야말로고아원의탈을쓴수용소였다.
문제는그방식이잘못되었다는걸아이들이모른다는것.
아주어릴때부터받아온취급을당연하게여기는것이다.
그렇게아이들은폭력을당연하게받아들이게되었고,뭐가옳은것인지인지조차하지못했다.
나또한고아원의방식이잘못되었다는사실을아카데미에와서알게되었으니말다했지.
릴리스와만나기얼마전,고아원이문을닫았다는소식을들었다.
설마해서물어본건데,역시나…
“블루피스고아원이요.”
나는얼굴을찡그리며물었다.
“고아원에서나올때뭐받은거없어?”
“…은화한닢이요.”
나는욕지거리가튀어나오려는것을간신히참아내었다.
어린아이들을길거리로내보내면서해준게고작은화한닢?
‘진짜미친놈들인가?’
아카데미도서관에서알아본바,국가차원에서고아원에지급되는지원금은상당한수준이었다.
그런데뭐,은화한닢?
끝까지본인들이익만챙기는쓰레기같은인간들이었다.
‘써….’
그인간들의면면을떠올리자입안에쓴맛이가득차오르는것같았다.
그악독함에치를떨고있자니릴리스가내어깨를감싸왔다.
“괜찮아?”
고개를돌려릴리스를바라보자,
“…릴리스,잠시실례좀할게요.”
“응?…우읍…”
달았다.
입술의감촉,타액,심지어향기까지.
모든 것이 달고달았다.
입안에가득찬쓴맛을달콤한릴리스와의입맞춤으로중화시키고서야진정할수있었다.
홍시처럼달아오른릴리스를뒤로하고소녀를돌아보자.
“…어디아파?”
소녀는삐질삐질땀을흘리며고개를돌리고있었다.
“아,아뇨…”
왜그런지의아했으나일단은중요한것부터해결하기로했다.
“내게가져간물건,돌려줄수있을까?”
소녀는우물쭈물거리더니천천히주머니에서케이스를꺼냈다.
까만색의케이스가보이자솟아오르는안도감에다리가풀릴뻔했지만,상황이상황이기에애써버티고서있을수있었다.
소녀는케이스를내밀었다.
나는케이스대신소녀의눈을바라보았다.
새까만눈.
그녀가내민케이스보다더까맣고까만눈에내얼굴이비쳤다.
비쳐진나,그러니까소녀가보는나는이미어른이되어있었다.
고아원에서나온지2년밖에되지않았음에도소녀가보기에는이미충분한어른인것이었다.
나는케이스로뻗었던손을거뒀다.
고개만살짝돌린나는릴리스에게속삭였다.
“릴리스,저-”
“여깄어.”
릴리스는기다렸다는듯이내게돈주머니를건넸다.
그걸멍하니바라보고있자릴리스가미소지으며말했다.
“너라면어련히그럴테니까.”
“…고마워요.”
나는소녀가건넨케이스를집어들었다.
그리고주머니에서금화열개를꺼내들어소녀의손에올려두었다.
눈이화등잔만해진소녀는나와금화를번갈아가며바라보았다.
소녀는금화를쿡쿡찔러보고는,이어서빛에반사시켰다.
마도제국금화의복제방지인장을발견하고는그금화가진짜라는것을깨달았는지소녀의안색이새하얗게질렸다.
“이,이게대체…?”
“물건값이야.”
“…훔친물건인데요?”
소녀는나를미친사람보듯이바라봤다.
그래뭐,누가봐도미친놈맞겠지.
훔친물건을돈주고사는게미친놈이지정상일리가.
하지만나는도저히소녀를내버려둘수없었다.
만약내가후원을받지못했다면,만약아카데미에입학하지못했다면,만약내가릴리스를만나지못했더라면,지금소녀의자리에는내가있었을수도있으니까.
살기위해절박한심정은나도아주잘알고있었다.
소녀가도둑질을했던것처럼나는공부를했으니까.
방식만다를뿐이지살기위해노력했다는점에서나는소녀를도저히미워할수없었다.
“훔친물건이지만어쨌거나네물건이었으니까.내가이걸그냥가져갔으면나도도둑질하는거나다름없잖아?”
“…뭔가이상한말인데묘하게맞는것같기도하고…”
당연하지,궤변이니까.
소녀는금화를들고만있었다.
무슨폭탄을들고있는것같은태도였다.
“…이렇게해주시는이유가뭐예요?”
소녀는불안함과경계가뒤섞인복잡한눈으로나를올려다보았다.
이에나는빙긋웃으며답했다.
“나도잘알거든.그심정.”
그러자소녀의표정이일그러졌다.
그래,당연히짜증나겠지.
릴리스가골라준옷을입은나는평민으로보기힘드니까.
곱게자란귀족의입에서이런말이나온다면나같아도화가날것이다.
하지만.
“나도블루피스출신이야.”
“….네?!”
소녀는다시눈을크게뜨며새된소리를내뱉었다.
나는그런소녀의머리에손을올렸다.
소녀는너무놀란나머지저항할생각도못했다.
그녀의머리를쓰다듬으며천천히입을열었다.
“나도그빌어먹을곳에서살았었어.지금에야새로운길을찾았지만어쨌거나.”
“그런곳에서도나는기회를얻어서살고있어.심지어너는그곳에서벗어나더자유로워진상태야.기회가넘쳐날거란말이지.”
“포기하지말고언제나기회를노려.기회가온다면물불가리지말고쫓아가서쟁취해.그게현명한거고,그게강한거야.”
내말을멍하니듣고있던소녀는,
꾸욱
천천히주먹을쥐어금화를잡았다.
“…훔쳐서죄송합니다.”
“그래.”
“그리고….”
소녀는주먹을꾹쥐고자리에서일어났다.
그리고내게고개를숙였다.
“기회를주셔서감사합니다.”
나는소녀의머리를쓰다듬어주었다.
“정직하게살라는말은안할게.절박한거나도알고있으니까.그래도 최소한의 선은넘지마.그이상부터는오던기회도걷어차는거야.”
“…네.”
소녀는얼굴을붉혔지만내손을피하지는않았다.
—-
인파속으로소녀가모습을감췄다.
나는소녀가사라진곳을물끄러미바라보았다.
말없이그러고서있자니내팔뚝에뭔가부드러운것이닿았다.
화들짝놀라돌아보니릴리스가팔짱을낀것이었다.
“깜짝이야….”
“수고했어.”
“…제가제대로한걸까요?”
말은당당하게했지만나자신도아직부족함이많은사람이다.
저런아이에게조언할수준이될까?
내판단이정말맞는걸까?
내가괜히쓸데없는말을해서이상한마음만심어준게아닐까?
그런의문이꼬리에꼬리를물고쭉이어졌다.
그연쇄를끊은것은,
물컹~
“!!!”
손아귀에느껴진말로표현하기힘든압도적인부드러움.
“리,릴리스?!!갑자기이게무슨…?!”
화들짝놀라손을떼자릴리스가배시시웃으며말했다.
“칭찬.”
“누가칭찬을이렇게해요!”
“내가.그래서싫어?”
“……”
도저히싫다는말이나오지않았다.
그런내손을잡은릴리스는이번에는자신의머리위에올려놓았다.
“?”
“나도칭찬해줘.”
“….?”
갑자기왠칭찬인가.
어이가없어서바라만보고있자니릴리스의볼이서서히부풀었다.
“이름모를여자애는해주면서나는안해줘?”
아,그게문제였습니까?
나한테쓰담쓰담받고싶으셨던거였어요?
‘그렇다면-‘
쓰담쓰담
안해줄이유가없지.
내가머리를쓰다듬자릴리스는해맑은미소를지었다.
그무방비한웃음에나도웃음이터져나왔다.
‘진짜…너무귀엽잖아요!’
이러니내가프러포즈를…응?
나는재빨리주변을살펴보았다.
이내시야에들어온한가게안쪽의시계.
7:04
새해까지앞으로4시간56분.
그안에아까같은분위기를만들어낼수있을까?
‘방금이진짜좋은타이밍이었는데…’
아쉽게놓치고말았다.
하지만아쉽다고돌이킬수있는것도아니었기에나는다짐했다.
남은5시간언저리동안어떻게든분위기를만들어내야겠다고.
반드시오늘이,올해가가기전에어떻게든!
…그렇게생각하던때가저에게도있었습니다.
나는허망한시선으로앞을바라보았다.
수도에서가장큰광장의중앙시계.
11:48
새해까지앞으로12분.
‘…망했다.’
지나간시간동안도저히분위기를만들어내지못했다.
생각해보니저녁이후에는좀활동적인일정을짰었지…
마법사격을끝낸직후에반지를건넬수는없지않은가.
안그래도마법발동음때문에귀가얼얼하구만.
그렇게30분,한시간,4시간.
정신을차려보니이상황이었다.
릴리스와의축제가너무재밌던나머지나도모르게신나서즐기고말았다.
앞으로12분.
분위기를만들고자시고시간이부족했다.
‘지금건네야하는데….’
광장은새해를기다리는사람들로가득차있었다.
아무리인식저해마법이있다고해도이토록프러포즈하기안좋은장소가또있을까?
‘어떡하지?지금이라도릴리스를데리고으슥한골목으로갈까?’
이리저리고민하고있자니릴리스가내어깨를톡톡두드렸다.
“아서,우리재밌는거보러갈래?”
“재밌는…네,좋아요!”
뭐든사람이적은곳으로가야했다.
그래야오늘이가기전에프러포즈를…!
릴리스는나를이끌고인파에서빠져나갔다.
광장에서살짝떨어진곳으로가서멈춘릴리스.
주변을둘러봤지만딱히볼만한건없는곳이었다.
“저,릴리스.뭘보여주신다는-”
“꽉잡아.”
“네…….에에에에에엑?!!”
나를단단히붙든릴리스는돌연하늘로솟구쳤다.
그녀를잡고있는나또한얼떨결에같이치솟았다.
바닥이순식간에멀어지고건물들의크기가작아졌다.
“우와아아아악!!”
눈을질끈감고있자니어느새움직임이멈췄다.
릴리스의손길이내뺨에닿았다.
“눈떠봐.”
“릴리스-”
“괜찮아.나믿고눈떠.”
이에나는감았던눈꺼풀을천천히들어올렸다.
그리고.
“와아…..”
감탄을금치못했다.
밀가루알갱이처럼보이는사람들,
다닥다닥붙어있는건물들,
가게들에서흘러나오는화려한불빛들까지.
그모든것들이내발밑에있었다.
“예쁘지?”
옆에서들려온릴리스의물음에나는고개를끄덕일수밖에없었다.
하늘자전거를타면서야경이궁금하다생각은했는데이정도일줄이야.
“도대체어떻게…”
고개를돌려보니나와팔짱을낀릴리스가미소지으며나를보고있었다.
“물론비행마법이지.거기다가다른인간들은우리를못보도록투명마법까지걸었어.”
그쓰기어려운데다가마력잡아먹는괴물로불리는비행마법을이렇게바로사용하다니,새삼외신의힘이얼마나대단한건지실감되었다.
야경을보며감탄하던나는릴리스를돌아봤다.
릴리스는야경을내려다보고있었다.
아래에서올라온빛이릴리스의얼굴을밝게비추었고,까만눈동자가이리저리빛나고있었다.
그 아름다운 모습에 나는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이다.’
“…예뻐요.”
“그치?이런시내가특히야경이예쁘-”
“아뇨,릴리스가요.”
“…으응?”
릴리스가 의아해 하며 나를돌아보는그순간,그녀의입술에입을맞췄다.
쪽,쪼옥……쪽쪽…
“후음……갑자기왜…그래?”
나는릴리스의의문에답하는대신다른질문을던졌다.
“하늘자전거기억나요,릴리스?”
“으,응?기억나지.그건왜?”
“그것처럼투명한바닥을만들어줄수있어요?”
“…가능은한데.”
“부탁해요.”
릴리스는내의도를짐작하지못하겠다는듯고개를갸웃거렸지만이내손을휘저었다.
그러자발바닥으로단단한무언가가느껴졌다.
보이지는않지만확실히존재하는투명한바닥.
“대략다섯걸음정도넓이야.”
나는그걸한두번밟아보고는릴리스와팔짱을풀었다.
“아서?”
나는릴리스와살짝거리를벌려그녀를마주보았다.
그리고품에손을집어넣어케이스를꺼냈다.
그것을본릴리스의눈이작게흔들렸다.
나는쿵쾅거리는심장때문에떨리는턱을애써움직여천천히말을꺼냈다.
“릴리스는제게너무많은걸줬어요.릴리스가아니었다면아까보았던소녀처럼되었을수도있죠.그래서보답해야겠다는생각을했어요.”
“나,나는딱히대가를바란게-”
“알아요.릴리스가준건순수한호의라는거.하지만사람의심리가그래요.호의를받았으면돌려주고싶어지는거.”
나는천천히케이스뚜껑을열었다.
붉은문스톤반지가야경의빛을받아영롱하게빛났다.
릴리스는반지를보고는양손으로입을가렸다.
그런릴리스를향해나는천천히무릎을꿇었다.
수십,어쩌면수백,수천번은생각했던말.
온갖것들이떠오르고또지워졌지만결국내가하고싶은말은하나밖에없었다.
쓸데없는포장지는전부찢어버리고온전한알맹이만을릴리스에게건넨다.
“사랑해요,릴리스.저랑결혼해주세요.”
“!!!”
[!– Slider main contain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