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5
새해전날저녁.
수많은사람들이거리로나와축제를즐기기를한창이던그때.
축제의장인거리가한눈에들어오는테라스에한남자가서있었다.
그는얼굴을잔뜩찡그리고는불편한넥타이를이리저리매만지고있었다.
그는아련한얼굴로시끌벅적한거리를내려다본다.
“…부럽다.”
자신도저무리에섞여서놀고싶은마음이건만.
그는한숨을푹내쉬며몸을돌렸다.
원하지않는자리지만가문을위해서라면어쩔도리가없었다.
다시거짓미소를장착한그는건물내부로돌아갔다.
잔잔하게깔리는악기소리는분명수도에서가장실력좋은악단이연주하는것이었으나,그에게는너무도불편하게느껴졌다.
기운이빠질려던그때.
“오라버니!”
그를부르는카랑카랑한목소리에고개를돌렸다.
“루시!언제왔어?”
붉은머리카락이잘어울리는미소녀가만면에미소를띄우며다가왔다.
“방금요.오랜만이에요루크오라버니.”
그,아니루크는오랜만에만난여동생을꼭끌어안아주고싶었지만,자리가자리다보니자중해야했다.
“오랜만이야.잘지냈어?아버지는?”
“아버지는폐하를뵈러가셨어요.조금있다가오실거예요.”
루크와반갑게인사를나눈루시는목소리를낮춰속삭였다.
“정장잘어울리네요.”
“윽,안그래도불편해죽겠는데놀릴래?”
평소아카데미에서생활할때는딱딱한말투로말하는루크지만가족,특히여동생루시앞에서만큼은평범한오빠로돌아왔다.
“푸후훗,하긴오라버니는이런자리보다연무장이더잘어울려요.”
루크는고개를끄덕여동의했다.
애초에의도자체부터마음에안드는파티였다.
신년은기념하고싶고,하지만우리는귀족이니저런평민들하고같이섞여서놀수는없고,그러니우리끼리모여서파티를벌이자는엄청난논리.
루크는알고있었다.
먼저권력을잡았다고우대받거나무시당할이유는없다는것을.
만약우대받았다면그만큼베풀줄도알아야된다는것을.
현가주인블레이즈백작에게어릴적부터배워온올바른귀족정신이이자리를불편하게만든것이다.
만약이번파티가이례적으로황제가참석하는파티가아니었다면루크는어떻게든이자리에서벗어났을것이다.
솔직히지금도당장에라도자리를박차고나가버리고싶지만,
“그래도잘버텨줘서고마워요오라버니.”
“이정도로뭘.”
여동생말에껌뻑죽는루크는루시의부탁으로자리를지킬수밖에없었다.
그래도이제는대화라도나눌상대가생겼으니지루하지는않겠지.
“어,오라버니저기좀보세요.”
“응?”
루시의손끝을따라가자한사람이보였다.
밝게빛나는청은발과잘어울리는짙은남색의드레스.
남자귀족들의시선을한눈에사로잡는한송이의청장미.
“…일리나프로스트.”
“저번에는불참하더니이번에는또오셨네?무슨변덕이람.”
일라나의곁에는그녀와같은청은발의중년남성이서있었다.
눈만마주쳐도한기가느껴질것같은서늘한분위기의남성.
프로스트공작이었다.
그때프로스트공작의맞은편으로누군가가걸어갔다.
청은발의프로스트와대조되는불타는듯한적발의남자.
쌍둥이의아버지블레이즈백작이었다.
“아버지?폐하와얘기가빨리끝난것같네요.”
뭔가를생각하며걸어가던블레이즈백작은문득고개를들어프로스트공작을보았다.
시선이마주치자두대귀족은대번에눈쌀을찌푸렸다.
블레이즈백작이걸음을빨리하여프로스트공작을지나치려던그때.
“자네아들도아카데미에들어가있다지?”
프로스트공작이먼저입을열었다.
“마침우리일리나도들어가있다네.동기사인데서로알려나모르겠군.”
블레이즈백작의얼굴이와그작일그러졌다.
그들의딸과아들인일리나와루크.
두사람은각각랭킹1등과2등을차지하고있었다.
모를래야모를수가없는사이였건만,굳이저런말을하는것은.
‘1등에겐2등따위는안중에도없다는뜻.’
프로스트공작은희미한미소를짓고있었다.
피마저얼어붙었다하여냉혈공작이라불리는그치고는상당한감정표현이었다.
그미소를본블레이즈백작이뭐라입을열려던그때.
“아버지.”
루크와루시가다가왔다.
그들을본블레이즈백작은할말을꾹누르며자신의아들,딸에게다가갔다.
“오랜만이다.루크.”
“괜찮으셨죠?”
“그럼,내가누군데.”
두부자는서로에게씩웃어보였다.
그런데그때그들에게다가오는한사람.
“자네가루크블레이즈인가?”
프로스트공작이었다.
그는루크에게손을내밀었다.
명백한악수요청이었으나루크는이를받아야할지잠시고민했다.
그의바로옆에는블레이즈백작이있었다.
이걸받으면어떻게반응할지….
그런데그때,루크의시선에한가지가걸렸다.
프로스트공작의어깨너머에있는일리나가그를바라보고있었다.
눈을마주치자일리나는눈알을또르르굴려루크에게신호를보냈다.
그러나루크는.
‘…눈에먼지라도들어갔나?’
전혀알아먹지못한듯한루크의표정에결국포기한일리나는입을벙긋거렸다.
‘잡…아…잡아.악수를하라는말이었군.’
잠시고민한루크는이내손을뻗어프로스트공작의손을맞잡았다.
“루크블레이즈입니다.”
“그래,내딸이신세지고있다지?”
“신세랄까,제가많이배우고있습니다.”
최대한공손하게나선루크의자세에프로스트공작은흡족한(그의기준에서)미소를지었다.
“그래,그래야지.자신보다잘난사람에게배울줄아는것도능력이라네.”
프로스트공작은옆에있는블레이즈백작을흘끔쳐다보았고,이에블레이즈백작의얼굴이울그락불그락해졌다.
프로스트공작은만족하며악수를풀려고했지만,루크는이대로끝낼생각이없었다.
“하지만곧바뀔겁니다.”
“…뭐라?”
“불앞에서영원히녹지않는얼음은없으니까요.”
루크의말에프로스트공작의눈썹이일그러졌다.
“불앞에서영원히녹지않는얼음은없다라….”
루크의손을쳐내듯이놓은공작은싸늘한눈초리로루크를노려보았다.
“불길마저얼려버리는얼음.그것이우리프로스트라네.”
블레이즈백작을바라본공작은마찬가지로싸늘한어투로말했다.
“좋은아들을두었군.”
그말을끝으로프로스트공작은몸을돌렸다.
공작을따라가던일리나는잠깐고개를돌려루크를바라보았다.
그러곤입모양만으로말하길.
‘미안.’
루크는그런일리나의뒷모습을가만히지켜보았다.
“루크방금그태도-”
블레이즈백작의말을루시가가로챈다.
“혼나야죠.아무리화가나도공작한테그런태도는옳지않-”
“아주좋았다.”
“아버지!”
“그럼,그럼.불앞에서영원한얼음은없지.”
고개를주억거린백작은루크의어깨를양손으로집었다.
“강해져라루크.반드시저망할놈의콧대를짓눌러버려라.”
루크는일리나의마법을떠올리며난감한마음이들었으나.
“네,아버지.”
곧이곧대로말할수는없는노릇이었다.
‘언젠가는꼭.’
루크는그리다짐했다.
파티가무르익을무렵,루크는다시한번테라스로나왔다.
한손에든무알코올칵테일을바라본루크는한숨을푹내쉬었다.
‘맥주가그립군.’
차라리파티가빨리끝났으면좋겠는루크였다.
그러면당장이라도거리로나가다른사람들과축제를즐길텐데.
처량하게칵테일을홀짝이던그의곁으로누군가가다가왔다.
“오,루크아닌가?”
“맞습니다만,누구…..오,루카스님이셨군요.”
금발에까무잡잡한피부,좀건들거리는듯한자세.
그는골드썬후작가의장남인루카스였다.
“오랜만이네,잘지냈어?”
그의격식없는말투에마음속한구석이불편해진루크지만어쨌거나상대는후작가의장남.
그보다높은신분의 귀족 자제였다.
“내동생이신세졌다고들었는데.”
루이스골드썬.
그이름을떠올리자저절로눈쌀이찌푸려진루크.
그런루크의반응을본루카스는쓴웃음을지었다.
“그것참미안하게됐어.나도내동생이그렇게욕심많은놈일줄은몰랐지.”
루크의곁으로다가가테라스난간에기댄루카스는계속해서말을이었다.
“나도너처럼똑부러진동생이있었으면좋겠는데말이야.루시는요즘어때.잘지난다냐?”
“잘지내고있답니다.”
“그거야그렇겠지겉모습만큼이나똘똘한아이니까.”
잠시칵테일을홀짝인루카스는루크에게몸을기울였다.
“그나저나,듣자하니내동생이한학생에게크게신세를졌다는이야기가들리던데.”
‘한학생?’
“넌모르나?듣자하니평민이라던데.”
그제야루크는그대상이누군지알아챌수있었다.
‘아서를 말하는 거군.’
루크의표정에서답을알아낸것일까,루카스는비릿하게웃으며말했다.
“알고있는눈치네.혹시내게소개시켜줄수있겠어?동생이한일을사과하고싶어서말이야.”
‘말도안되는소리.’
루크는곧장그의말이거짓임을깨달았다.
아무리눈치가없고세상일에어두운루크지만그의여동생인루시가루카스에대하여투덜거리던일이기억에남아있었다.
그이야기가진실이라면눈앞에있는인간은절대좋은목적으로아서를만나려는것이아니었다.
“죄송합니다만저도그친구에대해딱히잘알고있지는않습니다.”
실기평가에서신세진것도있고,루크는나름대로아서를친구로생각하고있었다.
루크는친구를지켜주기로했다.
“흐음….그것참아쉽네.얼굴좀보려고했더니.”
다시칵테일을홀짝인루카스는다시가벼운목소리로말했다.
“이번에왜폐하가직접파티에참석했는지알고있어?”
그건루크도궁금한것이었다.
분명작년까지만해도본인이직접참석하지는않았던황제가갑자기참석의사를밝힌것이다.
덕분에루크도강제참석이되었고.
“어째서죠?”
“이건내가들은이야긴데말이야….”
루카스는목소리낮춰루크에게속삭였다.
“이번에아카데미신입생으로황녀님이입학하는건알고있지?”
“네.”
마도제국의제2황녀가입학한다는사실은이미전교생이알고있는유명한이야기였다.
그건딱히이렇게목소리낮춰서얘기할것도아닌데….
“그런데유명인사가한명더오는모양이야.”
“…황녀님만큼대단한인물이더있다고요?”
그러자루카스는고개를저었다.
“어쩌면더대단할수도.”
그는더욱목소리를낮춰말했다.
“이번신입생으로성녀후보가들어온다는소문이있네.”
루크는마셨던칵테일이역류하는것같았다.
“서,성녀요?!”
“쉿!목소리낮춰.아직소문이긴하지만성국에서도뭔가소란이있는모양이야.진짜일가능성이높은거지.”
마도제국황립아카데미에성녀라니….
호랑이굴에제발로들어오는꼴아닌가.
“아무튼!그런소문이있다~이말이야.”
“좋은정보감사합니다.”
“감사하면그친구좀만나게해주던가.”
“…죄송합니다.”
“에헤이참.”
루카스는난간에기대거리를내려다보았다.
“거참바글바글많기도하다.”
“모두축제를즐기기위해나온것이죠.”
“쯧,저렇게격식이없는난리통이뭐가즐겁다고.”
‘격식없다는말이저입에서나오다니.’
루크는황당한마음이었지만꾹참으며말했다.
“그래도즐겁게지내는모습을보니평화로워보이지않습니까?”
“그거야뭐….”
축제를살피던루카스의눈이한곳에박혔다.
“…오호.”
“뭘보신거죠?”
루카스는비릿한미소와함께답했다.
“쓰레기들사이에서빛나는보석이있군.”
“보석?”
“참으로탐스러운보석이야.그에비하면그주인은너무초라하군,돼지목에진주목걸이란딱저꼴을가리키는말이야.”
루크는도저히그가무슨말을하는지이해하지못했다.
하지만그런말을하는루카스의눈을보자그는소름이돋는것같았다.
찐득한탐욕이눌러붙어탁해진눈.
그리고그시선끝에는 한 쌍의 남녀가있었다.
새하얀피부와대조되는검은머리카락과드레스,진홍색입술이빛나는아름다운여성과,그에비하면초라한회색머리카락의남자.
루카스는입술을핥으며중얼거렸다.
“…갖고싶네.”
“강제로뺏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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