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7
1.
이 세계엔 ‘빌런’이 많다.
악당이나 적으로써의 의미가 아닌,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행동을 하는 존재를 일컫는 말로의 빌런.
소위 말해서 분탕이라 칭할 수 있는 자기중심적이며 쓸데없이 자존감이 높고,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는 오로지 자신만의 세계에 갇힌 존재들.
이는 키보토스에서 일반적인 시민부터 학생, 더 나아가 인간이라 부르기 어려운 존재들마저 지니고있는 일명 보편적인 광기나 다름없다.
목적, 신념, 혹은 야망이라고도 칭할 수 있는 다양한 영역의 광기를 보유한 이들은 언제나 그러하듯 무언가를 실현하기를 추구하며 행동한다.
그 대표적인 이들은 한번 생각해보자.
게마트리아의 ‘어른’들.
기업도시를 설립하고자 하는 카이저 코퍼레이션.
자신들을 절대적 존재인 ‘신’이라 주장하는 데카그라마톤의 AI.
각 학원에 존재하는 광기의 대명사인 학생들.
도시 전역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사건 사고들까지.
과연,
나 혼자만의 힘으로 이들 모두를 막아낼 수 있는가.
불가능하다. 내가 그림자 분신술을 쓸 수 있는 것이 아닌 이상에야 그들 모두를 막아낼 수는 없었다.
더 나아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메인스토리나 온갖 이벤트 스토리에도 개입해야 하는 상황인 이상 나 혼자서 모든걸 부담할 수는 없는 노릇.
그러니 내겐 더 많은 동료가 필요했다.
더 강한 힘과 권력이 필요했다.
…언젠가.
이 도시의 하늘이 붉게 물들게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부서져버린 도시를 보며 절망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야말로 초월적인, 신이라 칭해도 좋을 존재와의 대전이 준비된 미래.
꿈에서 보았던 광경을 다시금 재현하지 않기 위해.
“……이게 토니 스타크의 심정이었나.”
아득한 미래를 점지했던 영웅은 결국 패배하며 자신의 동료 대부분을 잃어야만 했다.
끝내 승리했지만, 아이언맨은 결국 목숨을 잃었다.
나도 그런 결말을 맞이할까?
불현 듯 드는 불길한 생각. 하지만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절대로 그렇게 되지 않는다.’
숭고한 희생? 영웅으로써의 최후?
내가 바라는 결말은 결코 그딴게 아니었다.
모두가 행복한 해피엔딩.
내가 추구할 목표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비극적인 결말은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선생님.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내 목표를 위해서.
2.
본격적으로 대화가 시작되기 전, 나는 선생과 유우카에게 미리 준비해두었던 자료를 건네주었다.
유우카는 둘이서 대화하라며 물러나고자 했으나 나는 세미나인 그녀에게도 정보를 전달할 필요성을 느꼈기에 두 사람 모두에게 들어달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전달된 자료를 읽던 두 사람은,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점차 표정을 굳히더니 이내 경악스러운 눈빛을 띠기 시작했다.
“이거, 진짜야?”
“네. 밀레니엄 폐허에서 관측된 내용을 토대로 최대한 다양한 자치구에서 진행한 결과입니다. 그 외에도 각 자치구 별로 발생하고 있는 초현상의 빈도는 현저히 수가 증가하고 있어요.”
“…….”
“…엄청난 이야기네.”
밀레니엄 폐허.
초현상특무부에 내가 입부하기도 전에 히마리와 에이미가 관측했던 현상, 아니 존재가 하나 있었다.
디비전(Divi:SION).
나중에 이르러 ‘헤세드’라는 이름의 데카그라마톤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존재.
히마리와 베리타스가 조사한 바로는 ‘디비전’의 자율사고체계의 복잡성과 습득력이 자신들이 지금껏 본 어떠한 인공지능보다 월등하고 아득하다고 했었다.
사람에 가까울 정도로 말이다.
과거, 데카그라마톤에 대한 정보를 습득한 히마리였기에 그녀는 ‘디비전’을 데카그라마톤으로 결론짓고 ‘디비전’의 사고 패턴과 파장을 분석하여 각 자치구에서 비슷한 현상이 있는지 조사하였다.
그렇게 밝혀진 것은 바로,
“…아비도스 사막 아래에 있는 뱀?”
“네. 그 개체의 패턴과 디비전의 사고 패턴이 기이할 정도로 비슷하다고 해요. 완전히 같은건 아니지만… 비유하자면 같은 과에 속한 동물들이 보이는 패턴과 비슷한 느낌이죠.”
비나.
나는 녀석의 추적을 목적으로 하여 아비도스로 향할 것이고, 동시에 메인스토리에도 개입할 목적이었다.
물론, 단순히 명목으로만 삼는게 아닌 진짜 조사를 목적으로 움직이는 것이었다.
“관측된 모습이나 증언에 따르면 그 개체 역시나 마찬가지로 기계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고 합니다.”
“응. 나도 들어본 적은 있는거 같아,”
밀레니엄의 학생회인 만큼 관련된 정보를 들은 적 있다 증언해주는 유우카. 나는 감사의 의미로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데카그라마톤은 키보토스 전역에 퍼져있다.
더 나아가, 그들은 알 수 없는 목적을 가지고 자신들의 군세를 확장하며 힘을 키우고 있거나 잠들어있다.
무엇을 위해?
모른다. 다른건 몰라도, 인간인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목적은 기필코 아니리라.
“저희 초현상특무부는 이러한 현상들을 조사할 생각입니다. 이를 위해서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하고요.”
그러니 막아야한다.
나와 히마리, 정확히는 디펜더스 모두가 내린 판단.
“내 도움이라니, 정확히 어떤…?”
“저희 활동을 보증 및 지원해주셨으면 합니다. 저희가 다른 자치구에서 활동하며 생기는 제약이나 보급 등의 문제를 대신 부탁드리고 싶어요.”
누군가가 듣는다면 샬레의 등 뒤에 숨겠다는 말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 부분은 어쩔 수 없다.
다른 자치구에서의 활동은 언제나 정치적인 영역에서 큰 걸림돌이 생기고 마니까.
초현상특무부가 어디까지나 밀레니엄 소속의 동아리인 이상 활동을 하면서 뒤따르는 정치적 문제에서 결코 해방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기에 선생, 샬레의 존재가 필요한 것이다.
실질적으로 샬레는 초법적인 권한을 지니고 있기도 하고, 더 나아가 현재에 이르러 많은 인망과 실적을 쌓으며 각 자치구의 인정을 받고 있는 조직이었으니.
일종의 명분인 셈이다.
밀레니엄 소속 초현상특무부의 나나시 히이로보다는, ‘총학생회 샬레가 보증하는’ 나나시 히이로의 조사 활동이 더 믿고 맡기기 편하지 않겠는가.
“좋아. 승인할게.”
그렇게 한창 설명을 하던 그때, 선생이 대뜸 승인한다며 내 제안서에 도장을 찍으려들었다.
…아니, 이 정도의 설명만 듣고 승인한다고?
유우카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눈을 개슴츠레 뜨더니 의혹으로 가득찬 목소리로 물었다.
“선생님. 잘 생각하시고 결정 내리신거 맞아요…?”
“그, 아직 설명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결정을 내려도 되는 겁니까?”
나도 마찬가지로 선생에게 묻자, 그는 이리 답했다.
“히이로는 나쁜 학생이 아닌거 같거든. 학생이 도움을 요청하는데 선생으로써 도와줘야지.”
“…….”
“…….”
아까와 달리 진중한 분위기로 말하는 선생.
그 어떤 의심의 티끌조차 묻어나오니 않는 시선에 나는 헛웃음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이건, 대단한데.’
상대가 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생판 처음 본 타인인 나에게 저런 신뢰를 보내올 수가 있다고?
선생은 학생의 말을 무시하지 않는다.
학생의 요청에 선생은 기꺼이 화답한다.
“내가 더 도와줬으면 하는 일이 있으면 말해줘.”
그야말로 ‘선생’이라는 단어로 형상화된 존재로 보일 정도로 눈앞의 선생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문득, 이 눈앞에 있는 존재야말로 다른 어떤 존재보다도 더욱 광기에 깃든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고 말 정도로 선생의 신념은 굳건했다.
“대단하네요. 당신은.”
“…그, 그래?”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어쩌면,
나 또한 게마트리아와 마찬가지로.
다른 일반적인 학생들과 똑같이.
저 선생을 통해 무언가를 배울 수 있을지 모른다.
내가 미처 내리지 못한 답을, 그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3.
선생과의 협력이 결정된 직후, 놀랍게도 나를 도와주겠다고 말한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바로 같은 자리에서 설명을 듣던 유우카.
그녀가 세미나의 회계로서 방금 들었던 이야기를 세미나 측에 이야기해보겠다고 말한 것이었다.
“저, 정말인가요?”
“그래. 네가 말해준 사안은 세미나로써도 무시할 수 없는 내용이었으니까. 거기다, 너라면 믿을 수도 있을거 같기도 하고? 예산적인 부분이나 그런 복잡한건 내가 도와주도록 할테니까.”
“유우카 선배…. 고마워요, 진심으로요…….”
샬레의 협력, 거기다 세미나의 협력이 더해졌다.
본의는 아니게도 최강의 아군 두 명을 단번에 얻은 셈이었다. 앞으로 활동에서 지원이 부족할 경우는 이제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의 상황이 되었다.
“이제 돌아갈거지? 태워줄테니까 같이 돌아가자.”
“선배, 혹시 언니라고 불러도 되나요?”
“아하하! 마음대로 불러!”
거기다 예상치도 못한 유우카와의 친분까지.
그녀와 함께 밀레니엄으로 돌아가며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세미나의 회계인 유우카는 나로썬 긴장해야 할 상대이겠지만 지금만큼은 그냥 편안하게 나나시 히이로로서 그녀와 즐겁게 대화했다.
그렇게 밀레니엄으로 돌아간 직후,
나는 부실로 돌아가기 전에 한 장소에 들렀다.
그곳은 바로.
“여러분, 새로운 장비를 구상해왔어요!”
“…….”
“…….”
내 마이스터들이 있는 곳.
엔지니어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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