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88
찰랑거리는황금색머리카락.
상대방을알아본나는화들짝놀라며고개를숙였다.
아니,정확히는숙이려했다.
“안그러셔도됩니다.”
숙이려던허리를천천히들어올리자황금빛눈동자와시선이얽혔다.
“선배님이니까요.”
“아…”
나는얼른계단벽으로물러섰다.
황족의앞길을막다니.
평소라면중형감이었다.
나를지나쳐가는황녀님의뒤통수로혀를내미는릴리스.
-재수없어.
-리,릴리스!누가보면불경죄로잡혀가요!
-누가감히우리를잡아가?괜찮아,아서.힘을어느정도회복된지금이라면이행성전체를박살낼수도있으니까.
30%로행성을날려버릴수있다니…
정말규격외의존재인것같았다.
다만…
-릴리스…
-알아,네가원하지않으면안할거야.
-고마워요.
역시상냥한릴리스다.
방에돌아가면방금전대련일까지더해서찐하게뽀뽀해줘야지.
그런생각을하며계단을내려가려던그때.
“잠깐.”
계단위쪽,그러니까…황녀님께서나를부르셨다.
“어…왜그러시죠?”
황녀님의황금색눈이나를날카롭게꿰뚫는것같았다.
역시황가사람은눈빛부터가평범하지않았다.
행동하나하나에서뿜어져나오는위압감이장난아니었다.
“방금전대련을보았습니다.”
“앗…”
그걸봐버렸단말인가…
“참…화려한대련이더군요.”
부끄러움에몸둘바를모르겠다.
황녀님이그인간분수쇼를봐버렸다니..
“그건어떤마법이었죠?”
“마법이아니라일종의저주입니다.”
“저주?”
나는품안에릴리스를들어보였다.
“제패밀리어,릴림은다양한저주를걸수있습니다.”
“그렇게빨리발동하는저주도있단말인가요?제가알기론저주는천천히작동하는방식일텐데.”
“맞습니다.릴림은그런저주를한번에강하게걸어증상을가속화시킨겁니다.”
“저주를가속화한다라…”
황녀님은턱을잡고무언가를고민하는것같았다.
‘으윽,높은사람앞에있어서그런가.가슴이답답해지는데…’
빨리용건이끝났으면좋겠다.
황녀님이천천히입을열었다.
“혹시그소환수,저주를느리게만들수도있나요?”
‘저주를느리게?’
-가능해요?
-당연하지.나보다강한존재가건저주가아니라면느리게는당연하고,박살낼수도있어.
역시외신님이다.
“가능합니다.”
“……”
그순간나는황녀님의눈에서빛나는한감정을읽어냈다.
‘…어?’
그것은도저히저사람에게서읽을수있을감정이라생각되지않았기때문에나는당황스러운기분이었다.
더관찰하려던찰나,황녀님은몸을홱돌려버리셨다.
“대답해주셔서고맙습니다.그럼.”
황녀님의뒷모습이빠르게멀어져갔다.
‘…뭐지?’
도대체무슨목적을가진대화였는지감이잡히지않았다.
고개를갸웃거리고있자니들려오는목소리.
-방으로바로돌아갈거야?
-음…
솔직히돌아가서릴리스랑놀고싶은마음도굴뚝같긴하지만…
-…다음대련까지만좀봐도괜찮을까요?
-다음대련?
-네,일리나와황녀님의대련이에요.
나는실기평가에서일리나의강함을직접목도한적이있다.
우아한몸놀림으로적에게영원한겨울을선사하는그모습이아직도잊혀지지않았다.
그런일리나와황녀님의대련이라니.
‘이건못참지.’
그리고한번쯤은황가의마법을직접봐보고싶다는마음이있었다.
매번책으로만그힘을접했기때문에두눈으로도봐보고싶었다.
물론릴리스가안된다하면바로돌아가는거지.
-…좋아.대신오늘식사는…
릴리스의시선이내입술로향했다.
그의미를알아챈내가빙긋웃으며릴리스를꼭끌어안아주었다.
-양보해줘서고마워요,릴리스.
정말이지,너무도상냥한외신님이다.
—-
대기실에도착하자사람들의시선이몰렸다.
시선에담긴감정은몇가지로나뉘었는데,
충격에휩싸인눈,
두려워하는눈,
의외라생각하는눈,
그리고…
“선배님!”
재미있어하는기색이역력한밤색눈.
“카리사.”
“아하하하!끝내주는대련이었어요!”
“그래,고마워.”
“후후훗,그건방진면상이처참하게일그러지는꼴이라니…”
음험하게웃는카리사의얼굴에서…
‘…왜레티가보이는것같지?’
어쩐지잘어울릴것같은둘이다.
“아!그러고보니제대련은보셨어요?대답을못들은것같은데.”
“봤어.대단하더라.”
“그래요?”
카리사는싱긋웃어보이면서무릎을굽히더니내품에있는릴리스를향해말했다.
“이쪽도잘보셨을까나~?”
역시저쪽도릴리스의정체를눈치챈모양이다.
어떻게대답해야할지고민하던그때.
스윽…
릴리스가손,아니앞발을내밀어카리사의뺨에올렸다.
“응?갑자기뭔…”
카리사는돌연말을하다말고초점을잃었다.
‘뭐,뭐지?릴리스가뭔가를하는건가?’
위험하지는않을까노심초사하던그때.
“…알겠어요.”
눈을깜빡인카리사가고개를끄덕였다.
그리고몸을일으키며다시활발한목소리로내게말했다.
“선배님,다음대련보러오신건가요?”
“어,응.맞아.”
“저도정말보고싶지만사서쌤이부르셔서빨리가보겠습니다.다음에또봐요,선배!”
카리사는후다닥대기실을빠져나갔다.
마치폭풍이지나간것같은대기실.
나는방금전에일을떠올리며릴리스에게물었다.
-방금뭐예요?
-머릿속으로직접말을걸었어.지금우리가하는것처럼.
-무슨말을했는데요?
-……
잠시침묵한릴리스가답하길,
-내가곧찾아가겠다고.
-카리사를요?
-아니,그배후에있는존재를.
카리사의배후에있는존재라면…
-…위험한건아니죠?
-응,걱정마.말했듯이차토구아는그리폭력적인성향은아니야.나와도일면식이있는녀석이고.그리고…내친척이야.
또친척인가.
이렇게들어보니외신은하나의핏줄로이루어진것이아닌가의심된다.
‘…그럼그핏줄의시작은누구지?’
그런고민에빠지려던찰나,
-시작한다.
송출기화면이두사람을비추고있었다.
청은발을질끈묶고당당하게서있는일리나.
마찬가지로금발을질끈묶고당당하게서있는황녀님.
둘의 자세나 분위기는 꽤나 비슷해보였다.
머리카락과 눈동자만 아니었더라면 자매라고 생각될 정도로.
특히그고고한귀티가 닮은 꼴이었다.
학생회임원이손을들었다.
그리고그손이떨어짐과 동시에,
쩌저저적!
일리나의발치에서시작하여바닥이얼어붙기시작했다.
순식간에퍼져나간냉기는이내스테이지바닥전체를빙판으로만들어냈다.
‘절대영도…저걸벌써꺼내다니…’
아무래도일리나는진심을다할생각인것같다.
심판이미끄러져넘어지는와중에도황녀님은중심을잃지않았다.
…아니,조금달랐다.
얼어붙은스테이지에서유일하게녹아있는부분.
황녀님이발을디딘부분만큼은냉기가도달하지못했다.
황녀님의금안이찬란한빛을뿜어냈다.
그러자황녀님의뒤로빛의고리가나타났다.
찬란한태양빛을형상화한것같은고리는빠르게회전하고있었다.
저모습은책에서도여러번에걸쳐묘사되었기때문에나도알고있는모습이었다.
‘헤일로…실물은저렇게생겼구나?’
황가에대대로내려오는비전마법으로유명한헤일로는황가의위엄을나타내는상징과도같은마법이었다.
모양때문에성국과마찰이있었다던데,어쨌든.
황녀님의주변으로빛이번쩍였다.
마법의전조인것같은데,일리나가그것을가만히두고볼리가없었다.
일리나의주변으로냉기가휘몰아치더니다시한번그녀의발치에서부터얼음이생성되었다.
하지만이번에는전방향으로펼쳐지는것이아닌,오로지전방,즉황녀님을향해나아갔다.
얼음무리가도달하기직전,황녀님의주변에서빛이번쩍였다.
그러자순식간에녹아내리는얼음들.
황녀님의주변에뭉쳐진빛은총세개.
저것또한황가의비전마법이었다.
이름은 헬리오 시스템.
태양계주위를맴도는행성들을마법으로구현한것이다.
숙련이부족한지아직세덩어리에서그쳤지만,원래는여덟덩어리가만들어져야한다.
만약여덟덩어리였으면일리나에게승산은없었겠지.
그런데,
쩌저저저적!
일리나를중심으로심상치않은소리가들렸다.
‘기다려주지않을생각인모양이네.’
휘몰아치는냉기.
드림랜드에서보았던프로스트가의비전마법.
니플헤임이었다.
냉기는곧장퍼져나가공기중의수분을얼렸다.
순식간에커진얼음덩어리는마치빙하가나타난것같았다.
냉기는황녀님이있던곳까지덮쳤고,그자리에는거대한얼음덩어리가생겨났다.
황녀님의모습은어디에도보이지않았다.
그렇단말은…
-저얼음에갇힌모양이네요.
-그렇네.인간아이치고는제법이야.
릴리스가칭찬을하다니…
일리나는확실히또래의수준을한참넘어선것같았다.
-끝이네요.저런빙하를뚫고나올수있을리가없어요.
-응?무슨소리야?
-네?
-내가말한인간은저파란머리가아니야.
-그렇단말은…
그순간,승리선언을하려던심판이빙하를돌아보았다.
빙하의중앙에는빨간점이나타나있었다.
그점은점점크기를키워갔고,얼음표면이부글부글끓기시작했다.
이윽고,
지이잉!
소름끼치는소리와함께얼음을뚫은빛은이내사방으로확산하며얼음을녹여냈다.
얼음은순식간에토막나덩어리째로무너져내렸다.
그중심에당당하게서계시는황녀님.
붉은광선.
나는저현상을마법책이아닌일반과학책에서보았었다.
-저거설마레이저예요?
-맞아.마법으로구현해서그런지상당히고출력이네.
과학적으로이론상으로만존재하는것을마법으로구현하다니…
심지어그걸실전에서사용할수준이라는것이과연빛의스페셜리스트인황가의사람다웠다.
니플헤임에서빠져나온황녀님은반격을시작했다.
빛이사방에서번쩍이며일리나를향해나아갔다.
일리나의얼음이녹아내리고박살났다.
일리나또한날카로운얼음조각을만들어내어빛덩어리를요격하려했으나,빛과만나는즉시녹아내리는얼음조각.
일리나는계속밀려나기만했다.
이대로라면대련은황녀님의승리로끝날것같았으나,
‘…어라?’
갑자기상황이바뀌었다.
일리나를밀어붙이던빛이그녀를향하는것이아닌사방으로뻗어나가기시작했다.
상황을자세히살핀나는탄성을내었다.
‘빛의산란!저런것도할수있었구나?’
일리나는방식을바꾸었다.
시간이조금걸릴지언정순도가높은,아주깨끗한얼음을만들어내고그것으로황녀님의빛을반사,혹은굴절시킨것이다.
그러고 보니 책에서도 저런 장면이 묘사된 적이 있었다.
황제의 빛 마법을 프로스트가의 마법사가 굴절시켜서 대군을 쓸어버렸다는 이야기.
설마 그걸 저렇게 응용할 줄이야.
사방으로뻗어나간빛은대련장을감싸는보호막을두드렸다.
그냥빛도아닌황녀님의마법이다보니보호막이불안하게흔들리기시작했다.
그순간빛이멎었다.
워낙에번쩍이던상황이라눈이적응하는데시간이걸렸다.
돌아온시력으로화면을보자동시에마법을멈춘두사람이보였다.
황녀님과일리나는주변을살피더니서로에게뭐라고말하는것처럼보였다.
잠시뒤심판이나오더니선언을했다.
“이번대련은무승부로하겠습니다!”
역시스테이지상태를보고둘다멈추기로한모양이다.
결판이어떻게날지는모르겠지만주변이초토화되는걸로봐서는쉽게끝나지는않았겠지.
‘한동안또난리겠네…’
3학년수석과비등하게싸운황녀님이대단한걸까,
아니면황녀님과비등하게싸운일리나가대단한걸까.
뭐가되었든간에한동안이주제로시끌시끌할것같다.
-갈까?
릴리스의물음에고개를끄덕였다.
대기실을나서자대련장을빠져나가는학생들이북적였다.
메인이벤트인일리나와황녀님의대련을보았으니이제볼장다봤다는거겠지.
‘뭐,나도똑같나.’
둘의 대련을 봤으니 만족이다.
‘비전 마법까지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어쨌거나 이후의대련은관심 밖이었다.
빠져나가는학생들사이에끼어들며기숙사로향했다.
-점심뭐먹고싶어?
나는방금전릴리스의조건을떠올렸다.
일리나와황녀님의대련까지보고가는조건으로이번점심은입으로…
저번에해봤던기억이떠올랐다.
-…뭐든맛있을것같은데요.
-후훗,그래?
앞으로벌어질일에대해설레는마음을가지고기숙사로향하던그때.
“서,선배님!”
내팔꿈치를붙잡는누군가의손.
얼마나힘이없는건지시야구석에서보이지않았더라면누가잡았는지도몰랐을것이다.
누군가하여돌아보니-
초롱초롱한눈으로나를올려다보는여학생.
‘커헉!왜여기서나오는건데?’
환영회에서마지막으로만났던신입생이자요주의인물.
“대, 대련 잘 봐, 봤습니다!”
성녀후보클라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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