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5
1.
콜사인 더블오.
이 단어가 밀레니엄에서 가지는 의미는 각별했다.
승리를 약속하는 상징, 밀레니엄의 최강자, 근접전의 스페셜리스트, C&C의 불량 메이드 등등…….
본디 비밀조직으로 활동했어야 할 C&C가 매번 시끄럽게 사건을 마무리하고, 부장인 네루와 부원들의 행동이 하나같이 과격하다는 평가는 많았으나 밀레니엄 내에서 네루가 명실상부한 최강자라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콜사인 더블오’라는 이름은 밀레니엄의 모두에게 두려움이자 칭송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이는, 비단 밀레니엄에서만 통용되는 것이 아닌 타 학원에서도 마찬가지로 전달되는 요소였기에.
게헨나의 선도부, 트리니티의 정의실현부 등 학원의 질서와 치안을 유지하는 무력기관이나 일반 불량배부터 군소적인 규모의 동아리들까지 네루의 강함을 인정하기에 적대하는 것을 꺼릴 정도였다.
물론 네루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닌, 각 학원의 최강자라면 필연적으로 받게 되는 평가들이라 할 수 있겠지만 그만큼 네루는 존재만으로 밀레니엄의 입지를 확고하게 만드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붙여진 ‘리틀 더블오’라거나, 네루의 뒤를 잇는 ‘차기 밀레니엄 최강’이라는 소문은 부담스럽기 그지없었다.
뭐?
리틀 더블오? 차기 밀레니엄 최강?
그 외에도 여러 소문과 칭호가 가득했지만, 하나같이 달갑지 않은 것들 투성이었다. 왜냐하면…….
“어! 호, 혹시 뉴스에 나왔던…….”
“언니! 저 팬이에요!”
“싸인 한 장만 해주세요! 부탁이에요……!”
‘시발.’
저들이 나에게 보내는 관심이 내가 바라는 형태가 아니었으니까.
이건, 영웅도 뭐도 아니고 그냥 인플루언서잖아!
내가 바라는 인기는, 이런게, 아니야-!!
“언니! 사진 한 장만 같이 찍어줘요!”
“……저기, 혹시 3학년 아니세요?”
“원래 이쁜 사람은 다 언니에요. 자, 빨리.”
“아, 예에…….”
이해할 수 없는 소리였지만 나는 결국 그녀들의 요구에 하나하나 따라줄 수밖에 없었다.
이걸 어떻게 거절하냐고…….
진짜 쉽지 않음.
…
…
===
[느그들은 이런거 없제??]
(히이로랑 함께 찍은 셀카.jpg)
그 유명한 언니랑 사진 찍었다.
계속 자기 1학년이라고 말 낮춰달라고 하시던데.
응 어림도 없죠? 계속 언니라고 부를거죠? 일단 이쁘면 다 언니야 ㅇㅇ
중간에 싸인해달라는 사람도 있었는데, 어색한지 삐걱거리면서 하나씩 다 상대해주더라ㅋㅋㅋ
진짜 존나 귀여웠음ㅋㅋㅋ
인상은 조금 사나워보이는데 말투는 또 친절하고, 가까이 가니까 부끄러워하고. 겉으로는 언니 느낌인데 그냥 귀여운 여동생 같은 느낌이었음.
껴안고 싶은거 ㅈㄴ 참았다. 평범한 움직임만으로도 사람이 홀릴 수 있다는걸 오늘 처음 알았다 ㄹㅇ…
다음번에는 일단 껴안고 봐야겠음 ㅎ
그리고 실제로 보니까 존나 이쁘더라.
그냥 평범하게 입었는데도 격이 다르다는 느낌? 보면서 속으로 감탄했다 진짜.
진짜 화보에서나 보던 모델이 우리 교복입고 걸어다니는 줄 알고 깜짝놀랐음.
너희도 기회되면 꼭 봐라.
물론 다른 학원놈들은 못보겠지만^^
=[댓글]=
[ㄹㅇ 둘러쌓이니까 당황해서 얼타는게 개귀여움ㅋㅋ]
[얼굴 빨개진거 존나 귀엽네ㅋㅋㅋㅋ]
[몸매… 와… 씨발…..]
[하… 이제부터 아침마다 찾아다닌다. 딱 대.]
[진짜 퐉스련 ㄹㅇ… 하아… 못참겠네요…..]
[아 씨발 학교 존나 멀어서 못갔다고;;]
└ [게헨나 아이피 검거]
└ (작성자) [ㅋㅋ 꼬우면 밀레니엄 오시든가]
└ [못갈거 같지? ㅇㅇ 내일 간다. 기다려라.]
└ [나 트리니티 학생인데 개추 눌렀다.]
└ [캬ㅋㅋ 게밀트 대통합ㅋㅋㅋㅋ]
[그래서 쟤 이름 뭐냐고. 왜 죄다 언니언니 이러냐.]
└ [1학년 나나시 히이로. 초현상특무부 소속이라는데? 쟤가 운영하는 의뢰 요청 사이트 가보면 정보 나와있음. 그리고 언니라고 부르는건 걍 이뻐서 ㅇㅇ…]
└ [이쁜데 왜 언니냐고.]
└ [이쁘잖아.]
└ [이쁘면 언니지…]
└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네요… 헤으응 언니….]
[진짜 해결사였네; 걍 언플인줄 알았는데. ㅋㅋ바로 우리 집으로 의뢰 넣으러 간다. 방문 서비스는 못참지ㅋㅋㅋㅋㅋ]
└ [오.]
└ [너 천재냐???]
└ [혹시 전지 학위를 취득하고 계신가요?]
===
“아.”
제발. 그러지 말아다오.
2.
원래 모든 일에는 인과가 있는 법이고, 결과에는 원인이 뒤따르는 법이다. 그렇기에 이번 사태도 마찬가지로 원인이 있을 것이다.
나에 대한 소문들과 칭호, 그리고 이번 사건까지.
전자의 경우는 내가 지금껏 학교에서 해온 일들이 있으니 그러려니 하더라도 후자는 달랐다.
아무리 라이노의 등장이 놀라운 일이라고 해도 그것만으로 내가 유명해지는 것은 이상한 일이지 않은가.
내가 이쁘장하게 생겼다고는 생각했으나, 고작 그것만으로 인기를 얻는 것도 이상하다.
C&C와 협업을 했다고 해도 아주 잠깐 반짝하고 사그라들 유명세여야 일반적이지 않겠는가.
그러니까, 그거다. 한국에서 봤던 영화 중에서 본의 아니게 유명해져서 한탄하는 영화가 있지 않던가.
‘왜 장사가 잘되는 거냐고!!!’
마찬가지로 의뢰가 쏟아졌다.
그것도, 대부분이 영양가 없는 의뢰들로.
물론 가끔씩 받아도 괜찮아보이는 의뢰가 가득했지만 대부분은 장난이나 팬심으로 보내는 의뢰였다.
거기다, 개인 메일이나 모모톡으로 쏟아지는 온갖 응원메시지와 청탁, 애원에 가까운 글들까지.
기분이 나쁘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기뻤지만.
뭔가 ‘왜 나한테 이런 일이?’ 라는 감상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 내 마음이다.
그렇기에 이건 이상하다. 지구에서 스무살이 될 때까지 인기는 커녕 여자와 인연조차 없던 나에게 갑자기 이런 일이 생길 리가 없다!
그러니 이건 초현상이거나 누군가의 음모다.
분명 그래야만 했다.
이런 이야기들을 히마리에게 전해주며 상담을 요청하니 그녀는 잠시 침묵하다 내게 말했다.
“히이로. 잠시 휴대폰을 보여주시겠어요?”
“아, 네.”
“후후. 감사해요.”
그리곤 무언가를 확인하듯 내 휴대폰을 살피더니 이내 팍- 하며 표정을 와락 구기는 히마리의 모습.
순식간에 흉악해지는 히마리의 표정에 순간적으로 내가 움찔하며 깜짝 놀랄 정도였다.
“서, 선배?”
“맞네요. 이건, 초현상이 틀림없어요. 누구 맘대로 제 후배한테 이런 메시지들을 보내는거죠? 이런건 제가 용납 못해요. 그러니 저에게 맡겨주세요, 히이로.”
“……그런가요?”
“그럼요. 제 히이로한테 이런 일은 없어야만 해요.”
…뭔가 묘하게 분위기가 서늘한거 같지만 나는 똑똑한 히마리가 알아서 해주리라 믿고 맡겼다.
잠시 나갔다 오라는 히마리의 말에 나는 할 수 없이 부실을 빠져나왔다. 그 과정에서 자신을 구해달라는 듯이 쳐다보는 에이미와 ‘용서못해요…’와 같이 불길한 히마리의 목소리가 들린거 같지만 기분 탓이리라.
……그래야만 했다.
그 뒤로 나는 도망치듯 부실로 빠져나와 빠르게 미리 예정해두었던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목표는 C&C. 의뢰를 마치기 전에도 자주 찾아오라는 말이 있기도 했고, 추가 보수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기로 약속했었기에 찾아가게 되었다.
똑똑-
가볍게 노크하고 부실의 문을 열자 드러난 것은 언제나와 같이 깔끔하게 정돈된 부실의 모습.
가구의 배치부터 세부적인 인테리어까지 말 그대로 ‘청결’하다는 감상을 품게 만드는 배치였다. 심지어 책상 위에 올려진 서류마저 칼 같이 정돈된 모습은 어딘가 강박까지 느껴질 정도.
방향제와 디퓨저도 사용했는지 달달한 향기마저 풍겨오는게 괜히 메이드 동아리가 아니구나 싶었다.
그렇게 눈을 동그랗게 뜨며 부실을 감상하던 그때.
“여, 후배. 왔냐?”
“앗! 히로쨩! 드디어 왔구나!”
잠시 다른 방을 청소하고 있었는지 청소도구를 손에 든 채로 나를 맞이하는 네루와 아스나.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청소하고 계셨어요?”
“어. 이번에 창고가 조금 더러워져서 말이다.”
“히로 쨩도 같이 청소할래?”
“그럴까요?”
할 것도 없었는데 청소나 해볼까.
아직 아카네와 카린은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니 본격적인 이야기는 나중에 해도 괜찮으리라.
“야호-! 그럼 청소 끝나고 아스나랑 놀자!”
“풋. 좋아요.”
도와준다고 하니 눈동자를 빛내며 달라붙는 아스나.
하염없이 밝은 모습을 보여주는 아스나를 보니 나도 마음이 편해졌다.
역시 마음이 불편할 때는 친구를 만나야지.
그렇게 청소를 하기 위해 도구를 가져다주던 아스나의 모습에 나는 잠시 그녀를 제지했다.
“잠시만요.”
나는 양팔을 걷어올리며 가슴께의 포켓 속에서 머리끈을 꺼내들어 입가에 물었다. 그리곤 손을 머리로 옮겨 긴 머리를 붙잡아 포니테일을 만들었다.
‘이 짓도 이젠 익숙해졌구만.’
여러번 반복해보니 결국 적응되더라.
처음에는 머리 하나 묶기도 어려워서 끙끙거렸는데 이제는 나름 여자답게 머리를 묶을 수 있게 되었다.
“다 됐어요. 이제 주세요.”
“…헛! 으응! 자 여기! 아하하!”
“왜 그래요?”
“으음~ 뭘까나. 히로 쨩은 참 이쁘구나, 싶어서.”
“……그래요?”
뜬금없는 칭찬에 쓴웃음이 나왔다.
요즘 현실이든 커뮤니티든 사방에서 예쁘다, 예쁘다 난리여서 뭔가 저 말이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물론, 그 탓에 요즘따라 거울을 보는 일이 늘어난건 비밀이었지만…….
“고마워요.”
그래도 칭찬에는 감사로 보답하는게 이치인 법.
나는 아스나에게 설핏 웃으며 이야기했고, 아스나는 어째서인지 고개를 슬쩍 돌리며 이내 상쾌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자! 빠, 빨리 청소하러 가자!”
“좋아요.”
나는 마찬가지로 확답하며 그녀를 따랐고.
“……감은 좋은데, 눈치가 저 정도로 없다고? 이게 가능할 수가 있는건가.”
네루는 히이로의 의외의 모습에서 경악하였다.
그렇게 우리가 창고 청소를 마치고 쉬고 있을 즈음, 카린과 아카네가 부실로 복귀하였다.
3.
“어머. 요즘 화제인 ‘언니’가 오셨네요?”
“반가워, 언니.”
“……그러지 말아주세요.”
가볍게 농담으로 시작된 인사였지만 정작 장본인인 나에겐 타격이 적지 않았다.
왜 죄다 나보고 언니라는거야.
물론, 전생 나이까지 포함하면 이해가 되지만 지금 나는 15살. 고작 1학년이란 말이다. 오히려 내가 언니라고 불러야 할 나이이지 않은가!
“그럼 저한테 언니라고 불러주시겠어요?”
“어! 나도! 나도 히로 쨩한테 언니라고 불리고 싶어!”
“…….”
…그렇다고 내가 다른 사람한테 부를 수 있냐고 한다면 그것도 고민해볼 이야기기는 했다.
내가 침묵하며 대답을 피하자 아예 땡깡을 부리며 내게 달라붙는 아스나.
“아 왜애~!”
“나, 나중에 해드릴게요. 그러니 좀 떨어져주-”
“난 지금 듣고싶은데? 응?”
아예 내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채 물어오는 아스나.
나는 얼굴을 확 붉힐 수밖에 없었다. 머리카락과 숨결이 닿아서 간지러운데다 이 자세는 뭔가 그, 가, 가슴끼리 닿고 있기도 했으니까.
나는 어버버 거리면서 결국 아스나의 꾀임에 넘어가 한가지 약속을 하고 말았다.
“약속이야? 나중에 해주기?”
“……네, 넵.”
나중에는 언니라고 불러주겠다는, 정녕 지킬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약속을 말이다.
그것으로 만족했는지 날 풀어준 아스나였지만 여전히 나는 그녀의 무릎 사이에서 벗어날 순 없었다.
날 애착인형으로 생각하기라도 하는지 나를 품에 겨안은 채로 내 어깨에 턱을 올려놓는 모습.
부담스러워서 빠져나갈까 생각도 했지만 완고하게 내 허리를 붙잡고 있는 아스나의 손길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이 상태로 C&C와 대화를 이어나가게 되었다.
“일단 보수는 세미나에서 추가적으로 보내드릴 거에요. 이번 사건은 세미나도 예상하지 못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히이로는 큰 부상을 입기도 했으니까요. 모든 비용은 세미나가 부담한다고 하네요.”
“오…….”
세미나가 비용 부담을 전부 부담한다라.
나쁘지 않은 이야기였다. 오히려 그렇기에 더 수상하게 느껴지는 이야기였지만.
애초에 의뢰를 수행하다가 다치는 일은 매번 있는 일인데 갑자기 여러 이유를 덧붙여서 나에게 호의를 베푼다고? 심지어 의뢰인이 리오인데?
이거, 설마…….
“그, 혹시 저 영입하시려는거 아니죠?”
“후후. 들켰나요?”
“…….”
미친. 진짜였다고?
“리오 회장님께서 히이로의 활약을 눈여겨보고 계시거든요. 물론 초현상특무부라는 소속이 이미 정해져 있기에 정식적인 영입은 불가능하겠지만…….”
“……?”
“자, 여기 이걸 받아주세요.”
그 말을 하며 아카네가 내게 내민 것은 하나의 카드.
아니, 정확히는 신분증에 가까운 것이었다.
[명예부원증]
그 안에는 내가 C&C의 명예부원임을 증명한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무려, 리오가 증인으로.
“……뭔가요. 이거.”
“뭐긴 뭐야. 명예부원증이지.”
그건 나도 아는데. 왜 이걸 주는거냐고요.
내가 새침하게 눈을 뜨며 네루를 노려보자 그녀는 헛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앞으로도 같이 일해 달라는 표시지. 뭐, 솔직히 나도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지만.”
“그러니까요! 대체 왜 이렇게까지-”
“아무래도 네가 리오의 마음에 들었나본데? 교칙도 편법으로 무시하면서 널 붙잡으려고 하는거보니.”
“…….”
“역시 차기 밀레니엄 최강이라고 불리는 후배는 달라?”
“아 제발……!!”
내 외침에 네루는 크게 웃었고, 다른 부원들도 마찬가지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장본인인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나한테 왜 그러냐고! 가만히 내버려달라고요, 제발!’
리오의 저런 행동 자체가 내게 부담을 더 안겨주는 일에 그치지 않았으니까.
솔직히 명예부원이 되는건 상관이 없다만, 리오 본인이 나서서 내게 접촉해오는건 별개의 이야기다.
‘이게 단순히 호의일 리가 없잖아!’
리오의 성정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나는 마음이 더 무거워지는 것을 느껴야만 했다.
물론, 그와 마찬가지로 묵직해지는 지갑을 보니 기분은 좋아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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