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8
네크로노미콘을 통해 아우터 갓에 대해 알아가겠다는 다짐을 한 바로 다음날.
“음, 포기.”
곧장 포기했다. 그 이유는…
“뭘 포기해?”
지금 내 품에서 귀엽게 올려다보는 이 릴리스가 문제였다.
“릴리스, 저희 한번 거리를 둬 볼-”
“싫어.”
“…..너무 자주 보면 침체기가 생길 수도-”
“싫어.”
“……”
그렇겠죠오오!!
나하고 떨어질 생각을 안 하는 이 귀여운 외신님 덕분에 내가 책을 못 읽어요, 내가!
릴리스를 잠시 방에 유기할 생각까지 했던 나는.
“냐앙~ 옴뇸뇸…”
내 교복 앞섭을 오물거리는 릴리스의 모습에 유기는 커녕 더 꼬옥 안아주고 말았다.
‘아….행복해..치유된다아…’
이런 귀여운 생명체를 유기할 생각을 하다니. 내가 미쳤지, 미쳤어.
네크로노미콘은 나중에 읽지 뭐.
—-
레이커드 엘긴은 문득 자신의 손이 떨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이유가 긴장이라는 것을 깨닫자 그는 헛웃음을 쳤다.
학생들이 보았다면 그가 표면적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 경악을 할 것이다.
그만큼 감정을 내보이지 않는 레이커드지만 지금만큼은 달랐다.
“후우….”
그는 심호흡을 하고 눈앞의 문을 두드렸다.
-똑똑
“레이커드 엘긴입니다.”
잠시 뒤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게.”
문이 저절로 열리자 천천히 나아가 방으로 들어선 그는 곧장 허리를 숙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러자 맞은편에서 들리는 앳된 목소리.
“오랜만인가요?”
“네, 올해 들어서는 처음입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요즘 시간 개념이 없어서… 일단 앉으시죠.”
그제야 방에 들어오고 나서 처음으로 고개를 든 레이커드는 정돈된 움직임으로 손님용 의자에 앉았다.
그 맞은편에는 금발의 젊은 청년이 앉았다.
기다란 다리를 꼰 청년이 손짓하자 레이커드의 앞에 커피가 한잔 나타난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진한 것만 마셨었죠?”
“네. 잘 마시겠습니다.”
예의상 한모금을 넘긴 레이커드는 커피잔을 도로 내려놓았다.
“그래서. 무슨 일로 찾아오셨는지?”
“어제 아카데미에서 일어난 소동을 아시는지요.”
“아아… 그 커다란 굉음 말이죠? 전 무슨 운석이라도 떨어진 줄 알았다니까요?”
금발의 청년은 탄성과 함께 손뼉을 쳤다.
“아하! 이번에도 연금술학부에서 시약폭발이 있었던 모양이군요.”
“…..유감스럽게도 아닙니다.”
“아, 그렇군요. 레이커드 교수가 온 것을 보면 마법학부 문제인 모양이죠? 또 어떤 바보 같은 교수가 마법을 역으로 실행했다던지?”
“학생이었습니다.”
“…..뭐라고요?”
레이커드는 무릎에 있던 작은 파일을 책상에 내려놨다.
저절로 떠오른 파일은 청년의 손에 들어갔고, 청년은 그걸 찬찬히 넘겨보기 시작했다.
“……패밀리어라. 놀랍군요.”
말과는 다르게 청년의 얼굴은 작은 미동 하나 없었다.
천천히 페이지를 넘기던 그의 손이 멈칫한다.
“광선, 저주, 보호막이라. 그 굉음의 원인은 광선이었나요?”
“네, 그 광선의 영향으로 야외 수련장의 바닥이 갈라지고, 단면이 끓어올랐습니다.”
“오호… 그곳이 갈라지다니. 상당한 공격력이군요.”
물끄러미 한 페이지를 바라보는 청년.
“고양이라…..이름이 뭐죠?”
“계약자인 학생은 릴림이라고 부르더군요.”
그 순간 청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릴림?”
처음으로 감정이 드러난 반응에 레이커드는 자리에서 펄쩍 뛰어오르려던 것을 간신히 참아내었다.
‘저분이 감정을?!’
그의 앞에 있는 청년은 젊은 외모와는 다르게 수많은 세월을 지내온, 이미 인간이라 부를 수준조차 넘어선 존재다.
억겁의 세월을 보내오며 감정이 마모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방금 그 반례를 보고야 말았다.
“레이커드 교수가 이걸 저에게 가져오신 이유는…”
“마법학부 학장님의 지시입니다.”
“거기서는 어떤 결정을 내렸죠?”
“당장에라도 압류를 하라고 날뛰시더군요.”
“흠….”
갸르스름한 턱을 매만지던 청년은 돌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대답은 나중으로 미루죠. 마법학부에는…. 최소 3일, 많게는 일주일 정도 기다리라 말씀드리세요.”
“네, 알겠습니다.”
“다른 용건은?”
“없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레이커드는 청년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총장님.”
“네, 또 보죠.”
레이커드가 나가자 총장이라 불린 청년은 느긋한 발걸음으로 방을 이리저리 배회했다.
“릴림…릴림….릴림…….”
그가 창문 앞에서 멈춰선다.
창문에 반사된 그의 눈은 양쪽이 전혀 다른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사파이어처럼 푸른 눈, 루비처럼 붉은 눈.
양쪽 눈이 보석처럼 빛나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가 두 눈을 살짝 찡그리며 중얼거린다.
“…..릴리스?”
—-
학생들이 부르길 ‘냥냥데스빔 사건’ 이후 한동안 나는 어떤 사건에도 휘말리지 않았다.
기존에 나를 괴롭히던 녀석들은 릴리스에 대한 소문이 퍼지자 나를 보고 도망치기에 바빴다.
그나마 루이스가 나에게 적개심을 나타내곤 했지만 릴리스의 하악질 한 방에 꼬리를 말고 도망쳤다.
덕분에 나는 아카데미를 다니게 된 이래 가장 평안한 나날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건 이후 3일차.
휴일을 앞둔 마지막 날의 아침이 밝았다.
오늘도 나는 릴리스와 함께 아침식사를 하고 또 같이 등교를 했다.
처음에는 어색하던 평화로운 일상도 3일만에 익숙해져버렸다.
이제는 수업중에 릴리스와 장난을 칠 수준까지 왔다.
릴리스의 윤기나는 털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준다거나.
몰래 무릎에 올려서 부드러운 볼따구를 쪼물쪼물 만진다거나.
릴리스는 이런 내 행동을 전부 받아주었다. 아예 내 손길을 즐기는 것 같기도 했다.
오늘도 릴리스의 꼬리를 이리저리 꼬아보며 시간을 보낸 나는 또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다는 것에 한숨을 내쉰다.
‘…이렇게 귀여운 생명체가 눈앞에 있는데 어떻게 집중을 하라는 거야?’
이건 불가항력이다.
“나도 릴림 만지고 싶다…”
옆자리에 앉은 레티가 투덜거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비단 레티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미 수많은 학생들이 릴리스를 만지기 위해 나를 찾아왔었다.
하지만 릴리스는 그 어떤 손길도 거부했으며, 강제로 시도하면 바로 냥냥펀치(발톱을 세운)로 응징했다.
“아서, 오늘은 힘 조절 좀 해주길 바래.”
“응?”
갑작스러운 레티의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레티가 말하길.
“다음 시간 실습이야.”
“아.”
일주일에 두 번 듣는 실습 수업이 돌아왔다.
저번 시간에 화려하게 데뷔를 마친 릴리스에게로 모두의 시선이 몰렸다.
“오늘도 볼 수 있는 건가? 냥냥데스빔!”
“저번 시간에 조퇴해서 못 봐서 아쉬웠는데 다행이다~”
“릴림 귀여워~!”
대부분이 긍정적인 반응이어서 다행이다.
‘그럼, 우리 릴리스가 얼마나 귀여운데!’
인기가 많아지는 게 당연….
‘…..마음 한 구석이 찌릿거리는 건 왜지?’
분명 아는 감정이었지만 워낙 빠르게 사라져서 알아볼 여유가 없었다.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니 레이커드 교수님이 수련장으로 들어오셨다.
“다음 주가 이번 학기 실기 평가인 거 다들 알고 있을 거다. 좋은 결과는 노력을 통해서만 나온다. 모두 대비를 열심히 하도록. 먼저 실행부터 시작하지.”
학생들은 저마다 자신 있는 마법을 다루기 시작했다.
공격 마법을 사용하는 학생들은 모래인형을 불러내 타격 훈련을 했으며, 지원 마법을 사용하는 학생들은 타격 훈련을 하는 학생들을 옆에서 도와주었다.
각자가 자신의 분야를 실제로 뽐내는 시간. 그게 바로 이 실습 시간이다.
…..분명 그래야 할텐데…
“이 고양이 다른 능력은 없어?”
“나, 패밀리어 처음 봐…”
“나도!”
“냥냥데스빔 보여줘!”
아니…. 니들 할 거나 하라고…
결국 레이커드 교수님의 중재로 나는 내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릴리ㅅ….크흠…릴림. 저주부터 연습해 볼까?”
“애오옹!”
모래인형을 불러낸 나는 어색하게 그걸 가리키며 외친다.
“고, 공격!”
“…..애옹?”
그러나 릴리스는 나를 이상하게 올려다 보았다.
“왜? 이해를 못했….아!”
이해를 못한 건 나였다.
‘이런 멍청이. 저주는 당연히 생명체한테만 통할 거 아냐!’
애초에 불가능한 것을 요구한 거다.
“그럼 보호막부터 할까?”
나는 주변을 둘러보다 공격마법을 훈련중인 남학생에게 다가갔다.
“저기…”
“응? 뭔데?”
“내 패밀리어가 보호막을 만들어 낼 수 있어서 한번 테스트 해볼려고 하는데. 도와줄 수 있을까?”
남학생은 나와 릴리스를 차례대로 보고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위력은 어느정도로?”
“처음에는 약하게 했다가 점점 강하게 부탁해.”
“오케이~”
손쉽게 파트너를 구한 나는 그가 공격하던 모래인형이 서있던 위치로 갔다.
“릴림, 보호막!”
-우웅
내 외침과 동시에 전방에 얇은 막이 생성되었다.
“오오! 보호막 능력도 있구나?”
“데스빔에 이어서 보호막이라니. 완전 전차 아냐?”
음… 전차와 고양이 상태 릴리스가 맞붙는다고 상상하니까…
‘이런, 귀여운 장면밖에 안 떠올라.’
냥냥펀치로 전차를 때리는 릴리스라니.
상상만 해도 웃음이 나올려 했다.
“그럼 간다!”
남학생의 손에서 불꽃이 일렁인다.
크기를 보니 확실히 힘조절이 들어간 모양이다.
“이얍!”
남학생의 기합과 함께 불덩이가 날아온다.
내가 직접 맞는다 생각하면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내 앞에는 무려 외신의 보호막이 버티고 있었다.
남학생의 불덩이는 릴리스의 보호막에 닿자마자 산산히 부셔졌다.
“오! 상당히 튼튼한 보호막이네?”
남학생은 더 뜨겁고 더 단단해 보이는 불덩이를 준비했다.
“간다! 으랴압!”
확실히 공기를 뜨겁게 달구며 날라오는 불덩이는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또 막혔어!”
“공격만 강한 게 아니란 말야?”
불덩이의 주인인 남학생이 밝은 미소를 지었다.
“이정도면 내 최대출력도 막을 수 있겠는데? 한번 해볼까?”
고민할 것도 없었다.
“좋지. 가장 강하게 날려봐.”
“조오았어. 흐읍…!”
남학생은 얼굴이 빨개지는 것이 멀리 떨어진 내게 보일 정도로 힘을 쥐어 짜냈다.
이윽고 만들어진 불덩이는 전보다 훨씬 크고 뜨거워보였다.
“간다!”
기합과 함께 던져진 불덩이의 화끈한 열기가 내게 전해져 왔다.
‘와 이건 진짜 엄청 세보이는-‘
보호막이 화염으로 휩싸이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저 너머에서 학생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온다.
“저거 괜찮은 거야?”
“너무 쎈 거 같은데?”
“고양아 안 돼~!”
하지만 곧이어 그 웅성거림은 다른 의미를 담기 시작했다.
“어! 보호막 보인다!”
“저걸 막아? 지리는데?”
“방금 화염구 꽤 쎈 거였는데. 멀쩡해보이네?”
열기가 좀 전해지긴 했지만 릴리스가 콧웃음을 치자마자 열기마저 보호막을 통과하지 못하게 되버렸다.
덕분에 그을림 1도 없이 멀쩡한 나는 멋쩍게 웃었다.
“이게 되네?”
확실히 이 보호막이라면 나는 아카데미 수준의 공격으로는 결코 다칠 일이 없을 것이다.
‘외신의 보호막….성능 확실하구만.’
웃으며 머리를 들이미는 릴리스를 쓰다듬어준다.
“역시 릴림이 최고야.”
“냐아~”
보호막을 해제하려던 그때.
“나도 테스트 도와줄까?”
“아! 나도 나도!”
“난 무속성 계열이라 도움이 될 거야!”
갑자기 보호막을 때려보고 싶다는 학생들이 줄줄이 손을 들었다.
흘끗 릴리스를 바라보자 여유롭다는 눈빛이 돌아왔다.
“….그럼 한번 해볼까?”
—-
그렇게 실행 시간이 끝나기 까지 나는 총 6명의 공격을 받아내게 되었고, 당연한 일이지만 릴리스의 보호막은 흠집은 커녕 단 한번의 흔들림도 없었다.
“실행은 그만하고 이제 대련을 하겠다. 짝은 알아서 정하도록.”
교수님의 지시에 친한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여 짝을 정했다.
레티도 서둘러 내게 달려왔다.
“아서! 나랑-”
그런데. 그때.
“어이쿠. 미안하지만 트롤은 내가 먼저 찜했는걸?”
어디선가 튀어나와 내 어깨에 팔을 두르는 루이스. 그러더니 다른 사람들에게는 들리지 않을 작은 목소리로 말하길.
“꼴에 고양이 하나 얻었다고 개기기는. 네 분수를 깨닫게 해주마.”
…..얘가 왜 이래..?
릴리스의 냥냥펀치를 먹여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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