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Planned a Su*cide Mission and Got Kicked Out of the Party

Chapter 87




정재는 책장으로 가서 가장 흥미로워 보이는 책의 제목을 뽑아들었다.

사실 그 전에 몇몇 제목이 없는 책들을 꺼내보았지만, 거의 낙서장에 가까운 그림만 그려져 있거나 내용이 아예 비어있는 경우가 흔했다. 이 책장에는 책들이 가득 채워져 있지도 않았지만, 그나마 채워져 있는 책들의 대부분조차 ‘나중에 집필할 상황을 염두에 둔’ 빈 노트인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정재는 그런 빈 노트들을 보며 사이먼 해리엇, 즉 셜록 홈즈의 실종이 계획된 것이 아닌 급작스러운 일이 아니었나 하는 의심을 굳혔다. 비어있는 노트의 수로 봐서는 이 방의 주인은 이곳에 좀 더 오래 머무르며 여러 가지 기록을 남길 예정이었던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 빈 노트 중에서는 ‘차후 북방 평정에 대한 세부 계획서’ 같은 그럴싸한 제목을 달고도 내용이 비어있는 것들도 있었다. 정재로서는 셜록 홈즈 같은 대단한 인물이 세웠을 북방 대책이 궁금해 미칠지경이었지만, 암호화된 것도 아니고 아예 비어있는 종이에 대해 궁금해 해봤자 달리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당연히 마법적으로 내용이 감춰진 것이 아닌지에 대한 검사는 미리 다 해보았다. 어쨌거나 이 선대 용사라는 자가 더 많은 저서를 남기기로 계획했으면서도 결국 일을 마무리짓지 못하고 사라졌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그것이 그의 의도에 의한 것이건, 아니건 간에.

“그럼 이 책을 살펴보도록 할까… 역시 이 내용을 가장 먼저 살펴보는 게 좋겠지.”

드르륵거리는 전구의 소음도 어느 정도 익숙해진 상황이었다. 열심히 종이에 전구들이 깜빡이는 패턴을 메모하는 제니스를 내버려둔 채, 정재는 ‘드라큘라 백작에 대한 기록 – S. 홈즈 각주본’이라고 써진 책을 펼쳐보았다.

정재는 책을 펼치자마자 책의 내용이 상당히 뒤죽박죽이고 시열대조차 제대로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책의 내용은 뜬금없이 루시 웨스턴라, 즉 브램 스토커의 소설 속에서 드라큘라에게 물려죽은 피해자의 사망 경위에 대한 분석으로부터 시작했다. 정재는 무언가 자신이 모르는 내용이 담겨있지 않을까 싶어 유심히 책의 내용을 꼼꼼히 읽어봤지만, 아무리 봐도 별 달리 아주 특별한 내용이 있어 보이진 않았다.

본문 자체는 알아보기 쉬운 정갈한 필기체로 적혀 있었다. 소설의 형식을 충실히 따랐던 브램 스토커의 저서와는 달리, 이 책의 내용은 일종의 보고서, 혹은 급히 요약된 내용을 저술한 원고 같은 느낌이었다.

오히려 그 점이 기록의 사실성을 더해주었기에 정재는 좀 더 흥미진진하게 글을 읽을 수 있었지만, 내용 자체는 소설 ‘드라큘라’의 내용과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간간히 소설 사이사이에 끼워져 있는 휘갈겨 쓴 글씨체의 문구, 즉 ‘S. 홈즈’의 주석은 내용상에서 의문점에 대한 몇 가지 날카로운 지적을 담고 있었다.

개중에 가장 길고 가장 중요해 보이는 주석은, 명백히 정재의 주의를 사로잡았다.

반 헬싱 교수 일행의 드라큘라 사냥에 있어서 하이라이트를 차지하는 부분, 즉 드라큘라의 관이 열리고 조나단 하커와 퀸시 모리스를 통해 드라큘라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순간에, S. 홈즈는 누구라도 떠올릴 법한 의문점을 아주 날카롭게 지적해 놓았다.

‘그렇다면 어째서 드라큘라는 평온한 표정으로 먼지처럼 사라져 죽음을 맞이했는가? 드라큘라가 반 헬싱 교수의 지략과 하커 부부의 뛰어난 행동력으로 궁지에 몰렸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정말로 이때 드라큘라는 사망했던 것인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죽음의 강을 건너 소멸했던 것인가? – 관련된 고찰은 다음 장의 에세이에서 계속’

드라큘라의 사망 이후에는 드라큘라의 최면술, 흡혈 능력, 권속화 능력에 대한 간략한 기술이 다뤄져 있었지만, 정재는 그 부분을 다급히 넘기고 서둘러 S. 홈즈가 남겼다는 에세이로 페이지를 옮겼다.

홈즈가 예고한 에세이의 제목은 단박에 정재의 눈을 사로잡았다. 제목부터 범상치가 않다. 정재가 아주 익숙히 여기 수밖에 없었던 이름이 또 하나 등장했기 때문이다.

‘드라큘라의 차원 간 이동의 가능성 – J. 모리아티의 행적과 관련하여’

정재의 가슴이 쿵쾅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정말인가? 정말로 그 이름이 이 시점에서 등장한 건가?

J. 모리아티라는 이름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했다. 안 그래도 정재는 열심히 셜록 홈즈 시리즈를 탐독한 적이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 소설들을 직접 읽지 않았더라도 살면서 ‘모리아티’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범죄계의 나폴레옹, 셜록 홈즈의 일생일대의 라이벌이라 불리는 남자.

사실 그가 홈즈와 대립했던 기간은 매우 짧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고, 60편에 달하는 셜록 홈즈 소설 중 모리아티의 이름이 언급되는 회수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심지어 그중 대부분은 단지 이름만 언급되고 넘어가는 수준에 그친다.

하지만 그런 사실이 오히려 모리아티란 남자의 미스터리함을 극대화시켜, 후대의 팬들에게서 모리아티라는 캐릭터의 재해석과 창작을 훨씬 더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사실 후대의 재창작이라는 건 설정에 구멍이 많을수록, 모호하게 뭉개고 넘어간 부분이 많을수록 활발해지는 법이다. 읽는 이가 자신의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부분이 훨씬 많아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판타지 소설계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반지의 제왕’과 ‘해리 포터’ 중 해리 포터 쪽의 팬픽션 소설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해리 포터가 아동용 소설로서 접근성이 더 우수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설정의 꼼꼼한 정도가 덜해서 구멍이나 재해석의 여지가 산적해 있는 것도 큰 영향이 있다.

그동안 정재는 모리아티 교수라는 중요한 인물에 대한 묘사가 그토록 부족한 것이 작가인 아서 코난 도일이 셜록 홈즈를 무대에서 퇴장시키기 위해 급조한 인물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왔다.

실제로 널리 알려진 상식에 따르면 셜록 홈즈의 창조자인 코난 도일은 홈즈가 지나친 명성을 얻게 되자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되었고, 결국 그를 죽여 없애기 위해 모리아티라는 메리 수 캐릭터를 급조하여 홈즈의 맞수로 내세웠다고 한다.

하지만 사실은 모리아티가 작가에 의해 급조된 인물이 아니라면, 사실은… 셜록 홈즈가 실존 인물인 것만큼이나, 모리아티 교수 또한 현실에 존재했던 인물이라면?

예전에 영국 청소년들 중 상당수가 셜록 홈즈를 역사 속에 실존했던 인물로 착각하고 있으며, 리처드 1세와 같은 인물은 전설 속의 인물로 잘못 알고있다며 영국인들의 역사 교육이 심각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사자심왕 리처드를 ‘로빈 후드’ 전설 속에 나나는 인물로 취급한 소년들은 역사 교육을 다시 받아야 하겠지만, 셜록 홈즈를 실존 인물이라고 생각한 소년들은 그 뛰어난 역사 지식을 인정받아야 마땅한 상황에 온 것이다.

“읽어보자. 일단은 읽어보고 생각하는 거야.”

정재가 천천히 날려 써진 에세이로 시선을 옮겨가며 중얼거렸다. 홈즈란 남자의 글씨체는 그다지 정갈하지 않아 설사 영어가 모국어라 해도 읽기 쉬운 내용으로 되어있었다.

이제 극도의 흥분 상태에 몰린 정재의 귀에 제니스가 끙끙대는 소리나 전구들의 소음은 방해가 되지 않았지만, 눈앞에 써 있는 영어 필기체가 알아보기 어렵다는 건 확실한 난제였다.

하지만 정재는 읽으면 읽을수록 홈즈의 분석과 드러나는 놀라운 사실에 깊은 충격을 받았고, 결국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탄성을 내지르며 장장 2시간에 걸쳐 홈즈의 짧은 에세이를 완독할 수 있었다.

너무 열심히 책을 들여다보느라 거의 충혈되다시피 한 눈을 깜빡이며 정재가 고개를 들었다.

정재가 건조해서 뻑뻑해진 눈을 꾹 눌러 일부러 눈물을 내는 사이, 제니스가 정재의 옆에다가 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의 옆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어, 제니스. 언제 왔어? 연구는 대충 끝냈니?”

“배고파서 더 못 하겠거든요? 우리 언제 올라갈 거예요?”

정재는 그제서야 주위를 둘러보고는 더 이상 드르륵대는 소음이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제니스가 전구들을 들여다보던 중에 지쳐 나가떨어져 관뚜껑과 유리관을 모두 덮어 더 이상 소음이 새어나오지 않게 막은 것이었다.

정재는 너무 책에 몰두한 나머지 허기를 느끼지 못했지만, 제니스의 반응으로 봐서는 그들이 이곳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 확실해 보였다.

“그러게. 밖에서 우리가 실종된 줄 알고 찾고 있을지도 모르겠어.”

“그러니까 제 말이요. 슬슬 올라가서 생존 신고도 해야죠? 이거, 다 읽으셨다면 말이지만요.”

“대충 다 읽었어. 응, 좋은 내용이야. 올라가자, 올라가서 저녁이라도 먹으면서 설명해줄게.”

정재가 흔쾌히 제니스의 제안을 수락했다. 방금 홈즈의 글을 통해 흥미로운 사실을 접하게 된 그는 몹시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정재가 열심히 책을 읽는 사이 제니스도 놀고만 있지는 않았는지, 그녀는 거의 열댓 장이 넘는 종이에 적은 그녀의 필기를 모아 옆구리에 끼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전 알아낸 게 거의 없지만, 그래도 서로 알아낸 걸 공유하는 시간을 가지는 게 좋겠어요. 여기 완전 보물창고잖아요? 종종 내려오자고요. 어…”

눈빛을 빛내며 지하실을 둘러보던 제니스가, 정재의 안색을 보고는 잠시 말을 흐렸다. 정재의 얼굴에서 무엇을 보았는진 모르겠지만, 제니스가 잠시 고개를 돌리며 덧붙였다.

“그… 그렇다고 너무 여기서만 사시면 안 돼요? 정말로요. 끼니는 제때 드시고, 또 잠도 제때 주무시고…”

“갑자기 그런 말은 왜 덧붙이는데? 네가 내 제자인 게 아니라 내가 네 제자인 줄 알겠어.”

“그야 그런 미친 사람 같은 눈빛을 하고 있으면 누구라도 그렇게 지적할 거거든요!”

결국 정재는 식당에 올라와 식사를 나눌 때까지 제니스가 말한 ‘미친 사람 같은 눈빛’이라는 게 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건 정재에게 당장 중요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정재는 신나게 거친 빵을 씹어먹으면서 제니스에게 자신이 알아낸 내용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제니스는 정재가 너무 광적으로 몰두한 상황에 걱정스러운 듯 싶었지만, 그녀 또한 만만찮은 호기심 꾸러기였기 때문에 결국엔 정재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고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제니스. 일단 제임스 모리아티가 어떤 인물인지는 다 이해했지?”

“뭐, 대충 알겠어요. 그러니까 엄청 강력한 암흑 길드 수장 같은 거 아니예요?”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실상은 그보다 훨씬 더 무서운 인물이었던 모양이야. 괜히 범죄계의 나폴레옹 같은 별명이 붙은 게 아니라고.”

“나폴레옹? 그게 뭐죠?”

“우리 세계에서 한때 전 대륙을 석권했던 인물인데… 관두자. 그런 것까지 설명하면 너무 길어지니까. 어쨌든… 모리아티는 단지 범죄를 통한 수익 만이 아닌 그 이상의 무언가를 바라고 있었어. 홈즈, 그러니까 사이먼 해리엇조차도 그것이 무엇인지 확신하지 못했던 듯해. 하지만 그는 아마 모리아티가 바란 것은 어떠한 ‘궁극적인 에너지원’인 것임이 분명하다고 추측했어.”

“궁극적인 에너지원이라는 게 뭐예요? 마나 구슬 같은 건가요? 마탑에 보관되어 있는 거?”

“글쎄. 그것도 하나의 예시가 될 수 있겠지. 사실 마나의 형태를 가진 것이라면 우리 세계에선 뭐든 신비한 물체로 여겨졌을 거야. 우리 세계는 마나나 마력 같은 게 구체화된 힘으로서 입증된 세상이 아니거든. 그런 힘을 쓸 수 없다 보니 좀 특이한 방향으로 강력한 에너지를 산출하는 방법들이 개발되었지만… 어쨌든 모리아티라는 남자가 마나와 관련된 무언가에 대한 단서를 잡고 그것을 노리고 있었다는 건 확실한 것 같아.”

“그… 선대 용사님이 그쪽 세상에선 경비병 같은 일을 했다고 했죠. 정확히 말하면 치안 유지관 같은 거요. 범죄자를 색출해내고 잡아내는, 그런?”

“뭐, 대충 그렇게 이해하면 돼. 그것도 범법자들을 잡아내는데에 아주 전문적인 일을 하는 최고의 권위자였으니까. 당연히 두 사람은 엄청난 대립각을 세웠고, 그 와중에 홈즈는 모리아티의 계획이 세계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아주 중요한 단서를 잡은 것 같아.”

“그게 뭐죠?”

“유럽… 그러니까 어떠한 대륙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끼치던 제국의 황족들을 연달아 살해해, 대륙의 모든 국가들이 얽힌 거대한 전쟁을 일으키는 거지. 홈즈의 에세이는 루돌프 프란츠 카롤 요제프와 카를 루트비히가 모두 모리아티의 모략에 의해 사망하거나, 그럴 예정이라고 써 있어.”

“솔직히, 그렇게 이름으로 알려주셔도 전 감도 안 잡혀요.”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태자와 그 뒤를 이은 후계자야. 그러니까…”

정재는 제니스에게 유럽에서 한때 지배적인 영향을 행사했던 합스부르크 왕조의 지위와, 19세기 오스트리아 제국에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이중 제국 형태로 전환되면서 겪었던 격동의 시대를 설명하는데에 약간의 시간을 들여야 했다.

다행히 제니스의 이해력이 제법 훌륭했던 덕에 제니스는 아주 어렵지는 않게 정재의 말을 대강 이해할 수 있었다.

“즉, 당시는 오스트리아라는 나라는 독일이라는 신흥 강대국에 비해 밀려나는 중이었지만, 그 권위는 여전히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런 와중에 모리아티는 유럽 국가들 간의 대립을 일으키는데에 다른 나라보다는 가장 위태로운 위기를 겪고 있던 오스트리아 제국을 건드리는 것이 국가들 간의 갈등을 촉발시키는데에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이해하면 되나요?”

“정확해. 적어도 홈즈는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 그런데, 여기서 조금 특이한 부분이 하나 있어.”

“으음, 뭔가요? 솔직히 슬슬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하는데요.”

“이 에세이가 예측한 내용과 실제로 벌어진 사건이 전혀 달라. 일단 내가 아는 바에 따르면, 에세이 내용에서 ‘카를 루트비히는 서서히 중독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오랜 시간 버티지 못할 것이다. 여기에 더 이상 손 쓸 수 있는 것은 없다’라고 되어 있는데, 즉 아직 카를 루트비히는 죽지 않았지만 곧 죽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 거야.”

“교수님의 세계에서, 실제로 로그가 죽었나요?”

“아마 죽었겠지. 정확히는 잘 기억 안 나지만, 그의 후순위 후계자가 황태자 자리를 물려받았으니 분명 금방 죽었을 거야.”

“그럼 별다른 게 없네요.”

“더 특이한 건 다음 부분이야. 에세이에는 대략 이렇게 쓰여 있었어. ‘페르디난트의 살해 시도에 모리아티가 게르만인들을 이용할 개연성은 극히 낮다. 전쟁이 세계적 분쟁으로 번지기 위해서는 적어도 비스마르크의 동맹이 유지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라는 건데…”

“비스마르크의 동맹이란 건 또 도대체…”

“같은 민족성을 공유하는 오스트리아와 독일 제국은 적어도 한 배를 타야 한다는 거지.”

“아하, 그렇군요. 그러니까, 어…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두 나라를 구성하는… 뿌리가 같다? 그러니까 그 독일인이 오스트리아 황태자의 살해에 연루되면 양쪽의 동맹이 깨지니까… 전쟁이 국지전에서만 끝나고 모리아티가 바란 커다란 싸움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제니스는 이해력에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정재는 신이나서 계속해서 설명했다.

“홈즈는, 모리아티가 헝가리인을 포섭해 다음 후계 순위인 페르디난트의 암살을 시도할 것이라고 예측했어. 실제로 페르디난트의 성향이 헝가리인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으므로,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간의 불안정한 연대로 유지되던 제국의 고리를 파괴해 대전쟁을 이끌어 내겠다는 속셈이었지.”

“그, 듣기에는 이상할 거 없어 보이네요. 무슨 문제가 있나요? 혹시 현실에서는 헝가리인이 아니라 독일인이…”

“둘 다 아냐. 전혀 다른 제3국의 인물이 프란츠 페르디난트를 암살하고 모리아티가 바란 유럽 국가들 간의 대전쟁을 일으켰어. 수천만 명이 희생당하고, 끔찍한 재앙이 벌어졌지. 하지만 가장 이상한 게 뭔지 알아, 제니스?”

“그… 그게 뭐죠?”

“내가 아는 기록에 의하면, 셜록 홈즈는 자국 정부를 도와 그 대전쟁에 참여했다는 사실이야. 독일인 스파이를 속여 넘겨 체포하고 거짓 정보를 흘리는 일을 맡았지. 제니스,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겠어? 한 가지 첨언하자면, 홈즈가 스파이 일을 한 것은 명백히, 명백히 카를 루트비히가 이미 사망한 이후야. 어쩌면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죽은 이후일 수도 있고.”

잠시 정재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던 제니스가 고개를 갸웃하다가, 갑자기 얼굴이 새하얘지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아, 안돼요!”

“뭐가, 뭐가 안 된다는 거야, 제니스?”

“도… 돌아갔군요? 선대 용사는 갑자기 사라진 게 아니라 자기 세상으로 돌아가버린 거군요? 이곳에서의 일을 마치고, 세상 누구도 모르는 방법으로… 돌아가버린 거군요? 교수님의 세계로, 자신의 세상으로… 하지만 어찌… 아니요, 안돼요, 생각하지 마세요. 부탁할게요, 교수님. 그 생각에 사로잡혀버리시면 안돼요. 돌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에 사로잡혀버리시면 교수님은 저흰 거들떠도-”

“걱정 마 제니스. 벌인 일을 치우지도 않고 도망칠 생각부터 하진 않아.”

그렇게 말하는 정재의 목소리엔 확신이 없었다. 솔직히, 에세이에 남겨진 모순을 알아차린 시점부터 정재의 머릿속에 그 생각만이 가득해졌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만약 발터가 그가 이것들을 지켜내길 바라며 그를 이곳에 보낸 거라면, 그의도를 숨긴 것도 납득은 가능했다.

집에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이 열리는 것만으로, 정재의 집중력이나 의지력은 심각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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