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94
1.
“첫 게임은 격투 게임으로 하자.”
“조, 좋아요…….”
승부를 가리기 제일 쉽고 무난한 격투 게임으로 첫 시작을 열었다.
“어떤 게임으로 하시겠어요……?”
유즈는 주변 서랍에 정리해놓은 격투게임 CD들을 꺼내들며 내게 질문했다.
나는 그 중에서 가장 익숙한 것을 골랐다.
[퀸 오브 파이터즈]
미도리와 모모이와 함께 오락실에서 플레이했던 게임이었다.
유즈도 아는 게임인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곧장 2인 플레이 세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되려는 기색을 보이자 마음이 들뜬 것인지 수동적이던 유즈의 행동이 능동적으로 변했다. 게임개발부 소속답게 게임을 시작하니 주저의 기색이 가득하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아니, 정확히는 결연에 찬 눈빛을 하기 시작했달까.
무언가를 각오한 듯한 기색이었다.
“그, 그럼 시작할게요…….”
“응. 그러자.”
소심하게 기어들어가던 목소리가 약간 더듬거리긴 해도 올곧게 나아가는 선명한 목소리로 변했다.
거기다 본래 내쪽을 흘끔거리던 시선도 모니터에만 집중하고 정신을 가다듬듯 심호흡을 하는 모습까지.
‘……이게 그 유즈퀸 모드인가?’
고작 게임 한판을 하는 것 뿐인데 왜 저렇게까지 결의에 찬 표정을 짓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유즈의 집중한 모습은 개인적으로 멋있어보여서 보기 좋았다.
게임에 대해서 진심이라는 것이 느껴져서 말이다.
무언가에 몰두할 수 있다는 것. 자신이 동경하는 것에 미친 듯이 도전하는 것은 참으로 멋진 일이다.
전생에는 현실에 치여살며 무언가에 깊게 몰두할 여유도 생각도 없던 나였기에, 저런 모습들이 더 멋있다고 여기게 되는 것은 어찌보면 필연이었으리라.
학생답게, 그리고 아이답게.
너무나도 일찍 어른의 감각을 익혀버린 내겐 허락되지 않았던 것.
그게 동경과 꿈이라는 것이었으니까.
‘…….’
과연, 지금의 나에게도 동일한 이야기일까.
확신을 내리지는 못했다.
그저-
“최선을 다할게.”
“네, 네……!”
지금 살아가는 현실에 최선을 다하자고.
못해봤던 일들을 전부 이 세상에서 이뤄보자고.
속으로 그런 소망만을 품을 뿐이었다.
하여, 나는 게임 패드를 붙잡았다.
지금의 현실에서 승부를 볼 시간이었다.
2.
내가 선택한 캐릭터는 귀신 얼굴을 한 우주 사무라이 캐릭터였다.
도대체 우주랑 사무라이랑 무슨 조합인건지 이해는 안가는 설정이었지만 아이언맨을 연상시키는 외형에 양손 검을 사용하는 것도 나름의 멋이 있어서 이번에도 나는 이 캐릭터를 선택했다.
반대로 유즈가 선택한 캐릭터는 전형적인 격투가 스타일의 거구의 여인이었다.
마초적인 느낌이 물씬 풍겨오는 거대한 체구의 금발 머리칼의 여인. 벗어던진 상의와 붕대로 가려진 가슴, 그 아래로 보이는 식스팩이 인상적이었다.
쿵─! 쿵─! 쿵─!
전투의 열기를 올리는 북소리가 울려퍼진다.
그러자 각 진영에 있던 두 파이터가 각각 푸른색과 붉은색의 기류를 휘감은 채 링 위로 올라왔다.
두 파이터는 전투가 시작되기 전 서로를 노려보더니 이내 각각 검자루에 손을 올리거나, 주먹을 맞부딪히는 등의 준비 자세를 취하였다.
사무라이 대 격투가.
외형도, 장르도 다른 두 파이터의 시선이 교차했다.
그렇게, 파이터들이 서로를 노려보며 당장이라도 펑하고 터져나갈 듯한 분위기가 이어지길 잠시.
[ FIGHT! ]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벨이 울려퍼진 순간.
두 파이터가 서로에게 달려드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사무라이는 납도되어있던 검을 뽑아들었고, 파이터는 붉은 기류를 휘감은 채 양 주먹을 치켜들었다.
첫 번째 라운드.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공백의 시점.
사무라이와 격투가는 우선 서로의 전투 스타일을 확인하겠다는 듯 초장부터 격전에 몸을 던졌다.
순식간에 가까워진 거리. 첫 공격은 사무라이였다.
카가가각─!
순식간에 발도된 곡도가 정면을 횡으로 베어낸다.
푸르른 기류가 잔상처럼 흐르며 살벌하기 그지없는 절삭음을 내었다.
격투가는 그 움직임을 미리 읽었다는 듯 스탭을 밟아가며 뒤로 몸을 빼냈다. 사무라이는 그런 격투가를 뒤쫓듯 다가가며 다시금 검을 휘둘렀다.
스아악!
하지만 이번 공격도 격투가에게 닿지 않고 허공만을 허무하게 베어낼 뿐이었다.
사무라이는 당황하지 않고 뒤이어 또 하나의 검이 세로로 휘둘러 격투가의 팔을 노렸지만…….
콰아앙!
이번에는 격투가가 몸을 측면으로 빼냄으로써 애꿎은 지면만 검으로 갈라낼 뿐이었다.
수없는 공세를 반복했음에도 격투가에겐 검이 닿지 않았다. 마치, 자신이 발달된 감각으로 이전에 만났던 상대들을 농락했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상대는 나의 공격을 모두 읽고 있었다.
또한, 동시에 나를 탐색하고 있었다.
내 방식을 모두 파악하고 그 뒤에 본격적으로 자신의 승기를 거머쥐기 위해서.
아주 악랄한, 강자만이 가능한 수법이었다.
사무라이는 양 손의 검을 강하게 붙들며 격투가를 노려보았다. 격투가는 이전과 동일하게 냉혹한 표정으로 사무라이의 행동을 관찰할 뿐이었다.
어서, 너의 모든걸 다 보여보라는 듯이.
그에 사무라이는 웃었다.
원한다면, 원하는대로 다 보여주겠다며.
사무라이가 발을 박차고 돌진했다.
검 하나를 검집에 집어넣고, 검 하나만을 쥐고 격투가에게 달려들었다.
격투가는 사무라이의 돌진에 뭔가 심상치않은 것을 느꼈는지 순식간에 수비 자세를 취했다.
콰아앙-!
지금까지와 다를 것 없는 일격이 격투가에게 날아들었다. 하지만 직후, 격투가는 그 생각을 달리할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의 공격이 끝난 직후, 곧바로 다음 공격이 쏟아지고 있었기에.
카가각-!
콰아아앙-!
스아악-!
연격. 그야말로 판단 따위는 개나 줘버린 본능에 맡긴 행동과도 같은 것이 이어진다.
현재 치루는 이 경기에 대한 이해도가 없는 초짜들이나 보이는 미숙한 판단에 격투가는 쏟아지는 연격을 다급히 막아내면서도 한숨을 내뱉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손수 알려줘야겠다, 하며 격투가는 양 주먹을 더욱 거세게 쥐었다.
그리고 이내.
‘지금!!’
끊임없이 쏟아지던 검격 사이에 생겨나는 빈틈을 찔러 격투가의 거센 정권이 사무라이를 노렸다.
아마 이번 공격을 통해 사무라이는 균형을 잃을 것이다. 이 찰나의 순간 생겨나는 빈틈의 여부를 초짜인 상대방이 알아챌 수는 없을테니 당황하겠지.
그렇다면 자신은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사무라이가 행하던 난잡하기 그지없는 연격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연격을 놈에게 선보여주리라.
그리 생각하며 주먹을 뻗었다.
이내 엄청난 충격음과 함께 상대방이 나가떨어질 순간을 기대하며.
하지만.
─키잉!
주먹을 뻗은 격투가의 귀에 들려온 것은,
그녀의 주먹 끝에서 전해진 감각은.
상대방의 비명이나, 주먹 끝을 울리는 타격감이 아닌, 자신의 공격이 수포로 돌아갔음을 알려오는 단단한 금속의 마찰음 뿐이었다.
그리고 격투가는 보았다.
사무라이가 또 하나의 검을 뽑아 휘두름으로써 자신의 주먹을 찰나의 순간에 방어해낸 모습을.
그리고 이내, 순식간에 양손 검을 휘두르며 자신에게 또 다시 달려드는 사무라이의 모습을.
‘뭐야, 방금?’
상대방이 보여주는 기교나 패턴은 전형적인 초심자만이 보여주는 미숙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방금 자신의 기습을 반응하고 쳐내는 것은 결코 초심자가 보여줄 수 있는게 아니었다.
‘실력을 숨기고 있었다? 그게 아니면…….’
단순히, 육체적인 감각으로 그걸 캐치해냈다?
격투가는, 아니 유즈는 표정을 와락 구길 수밖에 없었다.
‘이게 사람의 반응속도야?’
가히 짐승에 비견될 정도의 반응이었다.
어쩌면 짐승보다 더 할지도 모른다.
불과 몇 프레임, 어떠한 시전 자세조차 없는 단순한 일격이 뻗어나가는 순간을 읽어내고.
완벽한 타이밍에 그 공격을 쳐내버린다고?
‘도대체 뭐야, 이 사람?’
유즈는 자신의 옆에서 안간힘을 쓰며 패드를 조작하는 백발의 소녀를 바라보며 경악하였다.
분명히 하는 행동도, 판단도 초심자인데.
쉽지 않은 상대라는 분위기가 여실히 느껴졌기에.
‘집중, 해야겠어.’
유즈는 작게 숨을 내뱉으며 생각했다.
더욱 집중해서, 반드시 이기고야 말겠다.
낮게 가라앉은 유즈의 회백색 눈동자가 다시금 모니터 속으로 향했다.
3.
격투가가 잠시 당황하길 이내, 그녀는 재빠르게 자세를 잡곤 급히 전투방식을 바꾸기로 하였다.
상대방의 강점이 괴물과도 같은 반응속도인 것을 알아낸 이상, 이전과 같은 전투방식을 취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쿠웅-!
격투가는 수비적으로만 취하던 태도를 내던지며 순식간에 사무라이에게로 돌진하였다.
쾅!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거친 스탭을 밟아가며 사무라이에게로 접근하자 갑작스런 격투가의 돌진에 당황한 사무라이가 뒤로 물러나는 모습이 보였다.
격투가는 사무라이를 빠르게 쫓아가며 양 팔을 얼굴에 붙이며 공격 자세를 취했다. 흔히 말하는 복싱 자세를 취한 채 사무라이에게 다가가자, 사무라이는 당황하면서도 마찬가지로 공격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그야말로 난타전이라 할 수 있는 전투였다.
콰앙!
도저히 회피나 방어가 불가능한 거리에서 격투가의 주먹이 사무라이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사무라이는 밀려나지 않고 검을 휘둘러 격투가의 팔뚝을 베어냈다. 뒤이어 사무라이가 나머지 검을 휘둘러 이격을 가하려는 순간-
퍼어엉─!!
격투가가 몸을 비틀며 브라질리언 킥으로 사무라이의 안면을 후려찼다.
하지만 체력 게이지는 동시에 줄어들었다.
사무라이가 공격을 허용하면서 동시에 격투가의 허벅지에 검격을 쑤셔넣은 것이었다.
그에 격투가는 즐겁다는 듯이 웃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사무라이가 취하려는 전투방식이 무엇인지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상대방의 반응속도를 깨닫고 난투를 택하였듯, 상대방도 자신과의 기교와 기술적 차이를 알았다.
따라서 나는, 우리는 선택한 것이다.
육참골단(肉斬骨斷).
살을 내어주고 상대방의 뼈를 취한다.
우리가 동시에 택한 전투방식은 이것이었다.
세간에서는 상여자 전투법이라 불리거나, 짐승식 전투법이라고도 불리우는 미친 방식이었다.
순수 본능만으로, 감각에만 의존하여 싸우는 방식.
다만, 그 어떤 공격도 마음대로 막아낼 수 없게.
검이 휘둘러지고, 가슴 아래에서 피가 솟구쳤다.
주먹이 쏘아지며, 어깨 뼈가 으스러졌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즐겁게 웃으며 달려들었다.
…가히 평가하기로, 짐승의 전투라 칭할 수 있을 괴랄한 방식의 싸움이라 할 수 있었다.
…
…
…
콰아앙─!
사무라이가 주먹을 피해 옆으로 구르면 격투가는 지면을 향해 발을 내리찍었다.
발을 피해 마치 공이 튕기듯 몸을 일으키는 사무라이. 허공에서 몸을 굴리며 휘두른 검이 격투가의 어깨에 깊은 자상을 새겨넣었다.
격투가는 신경쓰지 않고 주먹을 뻗어 사무라이의 복부를 노렸다. 붉은 기류가 파도처럼 쏘아지며 사무라이의 하복부를 타격하자 거센 충격음이 일었다.
콰과과광─!!
두 사람은 힘겹게 숨을 몰아쉬면서도 서로를 노려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이내, 동시에 몸을 일으키며 서로를 겨눴다.
한 명은 검으로, 한 명은 주먹으로.
이제 체력 게이지는 서로 바닥인 상태.
각자 한번씩 승부를 따낸 상태로, 여기서 한번만 더 이긴다면 그 사람의 승리가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먼지가 휘몰아치고, 오직 거친 숨소리만이 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대화는 없었지만 두 사람은 서로 깨달았다.
지금의 일격으로 승부가 결정날 것임을.
그럼에도 두 사람의 눈빛에는 어떠한 부정적 감정은 찾아볼 수 없이, 그저 서로에 대한 인정만이 가득 담겨있을 뿐이었다.
격투가는 초심자임에도 자신을 몰아넣고, 이토록 긴장하게 만든 사무라이에게로.
사무라이는 남들보다 월등한 감각을 가진 자신을 상대로 접전이라 할만한 싸움을 만들어낸 격투가에게.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한 인정과 함께, 마지막을 장식할 기술을 펼칠 준비를 하였다.
그리고 이내.
두 파이터는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사무라이는 푸른 기류를 머금은 검을.
격투가는 새빨간 기운을 휘감은 주먹을.
승리를 향한 필사의 마음가짐을 담아.
서로를 향해 휘둘렀다.
콰아아아아앙──!!!
격렬한 폭발음과 함께 부딪힌 두 사람.
붉은 빛 주먹과 푸른빛 검날이 교차한 직후, 두 사람은 서로를 지나쳐 서로의 반대 자리에 섰다.
그리고 이내.
풀썩-
비틀거리며 서 있던 두 사람이었지만, 한 사람이 먼저 바닥으로 쓰러지며 승자가 정해졌다.
그 승자는…….
[ UZ 승리! ]
붉은 기류를 휘감은 격투가 여인이었다.
그녀는 상처로 점철된 팔을 높게 들어올리며 승리의 사인을 선보였다.
4.
“와아아아악-! 미친─!! 개아까워─!!!!”
“아싸아아…!!!”
격투 게임의 승자가 정해진 직후, 우리는 땀으로 범벅이 된 상태로 서로를 얼싸안았다.
“유즈 너 미쳤어! 미쳤어어! 진짜 왜 이렇게 잘해!”
“고, 고마워……. 히, 히이로도 엄청 잘해서, 나도 모르게 집중해버렸어……. 조, 좋은 승부였어……,”
“아 진짜. 긴장돼서 땀 엄청 흘렸잖아. 하마터면 3대0으로 질 뻔 했잖아 진짜.”
“나, 나도 간신히 이겼어. 히이로의 반응속도가 정말 말도 안되게 좋아서…….”
게임이 끝나니 다시 찐따 모드로 돌아온 유즈였지만 그럼에도 아직 게임의 여운이 남아있긴 한지 헤실헤실 웃으면서 내 품안에 머물러있는 모습.
유즈는 방금 했던 게임이 재밌었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중얼 말을 반복했다.
땀을 가득 흘린 채였지만 우리는 신경쓰지 않고 계속해서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른 게임도 하자!”
“응……!”
“뭐할까. 이번엔 협동으로 해볼까?”
“조, 좋아……!”
그렇게 우리는 머릿속에서 내기에 대한 생각을 진즉에 지워버린 채, 즐겁게 함께 게임을 플레이했다.
어느새 존댓말에서 반말로 대화하기 시작한 우리는 옆에 딱 달라붙어서 앉으며 온종일 게임에만 집중하며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그것도, 오후 늦은 시간에 쌍둥이들이 돌아올 때까지 계속해서 말이다.
“아니, 뭐야! 유즈는 대체 어떻게 꼬신거야!”
“우리 유즈가 이렇게 친근하게 대하는 사람이 있다니, 말도 안돼……!”
경악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문득 장난기가 돌았다.
나는 유즈를 품으로 끌어안으며 유즈의 턱에 손을 갔다대며 쌍둥이에게 선언했다.
“너희의 유즈, 나의 유즈로 대체되었다.”
“크아아아악!!!”
“안돼!!! 내 유즈가!!!!!!!!”
쌍둥이가 격한 반응을 보이며 침몰했다.
심지어 품 안에서 유즈가 얼굴을 붉히며 심상치않은 반응을 보이자 둘의 표정은 더욱 일그러졌다.
“킷싸마!!!!!!!!!”
“죽여주마, 나나시 히이로!!!!!!”
어어. 진짜 총들고 그러지 말아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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