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8
1.
베리타스(Veritas)가 어떤 곳인가.
누군가는 밀레니엄 최고의 해커들이 모인 동아리라 부를 것이고, 어떤 누군가는 동아리인 척을 하는 유사 동아리 집단이라고 말할 것이며, 또 누군가는 화이트 해커를 표방하면서 하는 짓이라곤 사고만 치는 윤리관이 이상한 괴짜들의 모임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평판과 표현이 있을지언정 모든 이들이 베리타스를 두고 유일하게 부정하지 못하는 것이 한가지 존재한다면 그것은 바로-
“해킹 실력. 아마 키보토스 어디를 뒤져도 그녀들보다 해킹을 잘하는 사람들은 없을거에요.”
그녀들의 실력이었다.
초현상특무부의 부장인 ‘아케보시 히마리’를 포함하여 총 다섯명으로 구성된 이 동아리(비인가)는 부원 하나하나가 밀레니엄 최고의 천재라고 해도 될 인물들의 집합이나 다름없었다.
그 탓일까, 정보의 자유와 독점 방지를 모토로 삼아 활동하는 이들은 다른 학교에 비해 학생회를 견제할 세력이 존재하지 않는 밀레니엄에서 유일하다시피 학생회를 견제할 능력이 있는 동아리이기도 하다.
하나의 자치구와 학원이 일종의 국가와 정부의 역할을 수행하는 이곳 키보토스에서 학원이 표방하는 정치체제와 정치적 환경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기에 어느 학원이든 권력자의 폭정과 독재를 막기 위해 그들을 견제하고, 감시할 세력이 존재한다.
게헨나에는 만마전을 견제할 선도부가 있으며,
트리니티에는 삼두정치로, 세 개의 우두머리가 서로를 견제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는 반면.
밀레니엄은 게헨나와 비슷하게 중앙집권제를 표방하고 있으면서도, 정치적으로 학생회를 견제할 세력이나 집단이 딱히 존재하지 않았다.
이 부분은 정치적으로도, 그리고 외교적으로도 큰 위험요소가 아닐 수 없었다. 지구로 치면 국가 원수의 행동 하나로 국가의 정세가 뒤흔들리는 셈이니.
그렇기에 내가 밀레니엄의 정치체제를 바라보며 떠올린 것은, 지구에서 감명깊게 읽었던 만화의 내용.
감시자는 누가 감시하는가?
(Quis custodiet ipsos custodes?)
유명한 고대 로마 시의 구절이자, DC 코믹스의 그래픽 노블 ‘왓치맨’에 등장했던 것이기도 한 구절.
이 문장의 의미는 간단하다.
개인을 지키기 위해 사람은 집단을 만든다. 집단은 개인을 감시하고, 보호하지만, 만약 그 집단의 머리가 독단을 저지른다면 그것은 누가 막을 것인가.
정치적으로 권력을 지닌 이들은 필연적으로 누군가에게 견제- 즉, 감시를 받게 될 수밖에 없다. 허나,밀레니엄에는 이러한 감시자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것은 명백한 문제였다.
본래는 대중을 감시하는 체제에 대한 비판이며, ‘왓치맨’에서는 개인을 감시하는 슈퍼히어로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으로 작용했지만, 이곳 밀레니엄에서는 기형적인 정치 구조에 대한 의문으로 작용한다.
개인을 감시하기 위해 만들어낸 초월적 존재- 학생회장 ‘츠카츠키 리오’를 과연 누가 막아낼 것인가?
나는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이미 내렸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베리타스’에 접촉하고자 한 이유이며, 앞으로 밀레니엄과 키보토스에서 발생할 수많은 사건들을 해결할 열쇠 중 하나라고 보았기에.
2.
그렇기에 난 베리타스를 만나기로 했다.
지금껏 나를 도와준 것에 대한 감사를 위하기도 하면서, 그녀들과 친분을 쌓아놓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합리적인 판단 하에서 행한 행동이었다.
세간의 평가로는 괴짜라고들 하지만 사람 대 사람으로는 괜찮은 아이들이라고 생각했기에.
근데.
“이, 이게 뭐니. 하레하레야.”
“뭔 이상한 별명이야, 그건……? 일단 설명해주자면 저번에 네가 코사카 와카모랑 싸웠을 때 방송하면서 얻은 수익이라고 설명해둘게.”
“그 방송으로, 돈을 벌었다고요……?”
직접 만나보니 알았다.
얘들은 천사야. 만나자마자 돈을 줬어.
‘……순간 사랑한다고 내뱉을 뻔 했네.’
나는 눈앞에서 태연하게 카페인 음료를 마시며 내 계좌에 어마어마한 금액을 찍어주는 하얀머리 소녀, ‘오마가리 하레’를 바라보며 눈물을 찔끔 흘렸다. 그녀는 혹시 여신이 아닐까? 하면서 말이다.
…그래도 일단 자세한 경위가 궁금하긴 했기에 물어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이런 돈을?”
“그건 말이지. 살짝 여론을 흔들었달까나?”
내 물음에 대답한 것은 ‘코누리 마키’. 붉은 머리카락과 나와 비슷한 푸른 눈동자를 지닌 아이였다. 그녀는 입가에 과자를 물어놓고 내게 손을 흔들었다.
“요. 저번엔 그냥 통화로만 얘기했었지?”
“반가워요, 마키. 그래서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요?”
“간단해. 우리가 송출하던 방송 하단에 우리 팀의 이름을 남겨놓고, 방송 직후에 밀레니엄과 D.U에 있는 시민들한테 메시지를 쫙 돌렸지.”
“……?”
“그리고 너의 이름을 조금, 아주 살짝만 팔아서, 일종의 후원이란걸 받았다고 할까? 은근 많이들 보내주더라고. 헤헤.”
나는 경악했다. 이것들이 대체 뭔 짓을……!
“아니, 그거 보이스피싱이잖아요!”
“엄밀히 따지자면 보이스는 아니고, 피싱 메일이죠.”
“그게 그거잖아요…….”
“따지고보면 피싱 메일도 아니네요. 저희는 후원을 보내달라고 했지, 강제로 뺏은게 아니니까요.”
이번에 대답한 것은 ‘오토세 코타마’.
목에 헤드셋을 걸치고 있는 베이지색 머리의 소녀였다. 그녀는 내 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키보드 자판을 열심히 두드리며 그렇게 말해왔다.
아니, 이게 그렇게 당당할 일은 아닌데.
이래서 다들 괴짜 집단이라고 하던건가?
갑작스럽게 두통이 엄청나게 몰려오는 기분이다.
그런 내 충격 어린 표정을 읽었는지 쓴웃음을 짓던 또 한명의 부원. 군청색 머리칼의 소녀, ‘카가미 치히로’는 변명하듯이 내게 말했다.
“후우, 난 그렇게나 말렸는데. 미안해, 나나시. 그래도 불법적인 수단이나 강제적으로 돈을 취득한 것은 아니니까 그 부분만큼은 안심해도 돼.”
“물론 피싱이라는 얘기가 조금 나오긴 했지만 결국 진짜로 우리가 진행한 일이니 상관없지 않을까? 거기다 후원한 금액도 전부 주인공한테 갔고.”
“음음, 맞지. 이 정도면 선행이나 다름 없지.”
“저도 동의합니다.”
“…….”
나는 그냥 한숨만 내쉬었다.
대체 어느 부분부터 태클을 걸어야할지 감이 안잡혔다. 계좌에 들어온 금액의 액수가 적지 않다보니 저절로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차오르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들에게 물어보았는데-
“이거 돌려줘야 하는거 아니에요……?”
“굳이?”
“그냥 가져.”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솔직히, 나도 이번만큼은 그냥 받고 나중에 시민들한테 보답하면 된다고 생각해.”
그냥 가지란다.
심지어 베리타스의 이성을 담당하는 것처럼 보이던 치히로마저 나보고 이 돈을 가지라고 했다.
‘……이게 맞나.’
후, 그래. 합리적으로 생각하자.
애초에 강압적으로 보내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시민들이 나서서 보답하고 싶다며 보내온건데. 그냥 무시하고 되돌려줄 수도 없는 노릇이잖냐.
그리고 되돌려준다고 해도 그 일을 하게 되는건 결국 내가 아니라 베리타스나 히마리 선배다.
나 때문에 그 고생을 시킬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럼, 감사히 받을게요.”
“응. 잘 생각했어.”
“맞아!”
나는 쓰게 웃으며 고민을 마무리지었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돈이 생길 줄은 몰랐는데 말이다.
이래서 사람은 선행을 베풀면서 살아야 한다는건가.
뭔가, 기분이 좋으면서도 묘했다.
3.
다소 이상했지만 베리타스와 공식적인 첫 만남은 의외로 잘 풀리게 되었다.
애초에 처음부터 내 정체를 밝히고 접촉했던 탓인지 나도 그녀들을 더욱 편하게 대할 수가 있었다.
…물론 아직까지 계좌에 담긴 금액이 조금 무겁게 느껴지긴 했지만 천천히 잊어갈 생각이었다.
그렇게 베리타스 아이들과 아이스 브레이킹이라도 하듯 적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었을 무렵, 나는 슬슬 그녀들에게 본론을 꺼내기로 하였다.
일단은 내가 하고싶었던 질문부터.
“저, 한가지 궁금한게 있는데. 베리타스 여러분은 제가 처음 도움을 요청했을 때, 왜 받아들인건가요?”
솔직히 아직까지도 의문인 점이다.
아무리 부장인 히마리가 나서서 말을 꺼냈다고는 해도 나와 저들 사이에는 어떠한 연관성도, 친분도 없었는데 왜 그녀들은 직접 나서서 도와준 것일까.
그에 대한 해답은 치히로가 꺼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여기에 있는 모두가 너를 응원하기 때문이지. 카이저 PMC 사건 때부터 네가 활동을 해준 덕분에 밀레니엄에서도 여럿 골칫거리를 줄일 수 있었고.”
“제가요? 밀레니엄의 골칫거리라니.……그랬나?”
“도시의 치안이란, 곧 학원의 보안과 직결되거든. 그것이 인터넷 상이든 현실 상이든 달라지지 않아. 너의 활동이 키보토스의 치안 유지에 큰 도움이 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니까.”
“…….”
“어쨋든, 우리는 네가 키보토스의 평화와 질서에 기여하려고 하는 이상 무슨 일이든 협조했을거야. 이건 나뿐만이 아닌, 베리타스 전체의 의견이야.”
아니, 나는 이렇게까지 진지한 대답은 예상안했는데.
묘하게 얼굴이 뜨거워지는 느낌이다.
나는 뭔가 이해관계가 맞아서 돕는, 서로 이득을 주고받는 그런 관계성을 생각했단 말이다.
직접적으로 응원한다는 말도, 나에게 고맙다는 말도 개인적으로 받은 것은 처음일지도.
그 다음은 코타마의 말이었다.
“물론, 그것도 있지만 당신과의 협력이 저희들에게 큰 이득이 될거라고 생각해서도 있죠.”
“이득?”
“당신의 목적과는 상관없이, 영웅 실크의 행적은 저희의 모토와 부합하는 부분이 많아요. 생텀타워가 정지된 후, 블랙마켓과 기업, 그 외의 여러 조직들이 저지르는 불법적인 일들이 늘어갔죠. 이는 곧, 밀레니엄과 저희 베리타스의 위험이기도 하고요. 그 부분을 실크가 압박해줬으니 저희의 사정이 한결 나아졌다고 할 수 있죠.”
“그, 그렇군요.”
“더군다나 실크가 도시의 이목을 잔뜩 끌어준 덕에 저희도 물밑에서 행동하기가 한결 편해진 것은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니까요.”
이어서 코타마는 말했다.
이렇듯, 나와의 인연을 얻은 것만으로 베리타스에겐 물질적, 정보적으로 아주 큰 소득이나 다름 없다고.
“이, 이제 그만 말해줘도 될 것 같아요.”
“부끄러워?”
“아뇨. 아닌데요. 전 당당해요.”
“풉, 그래 알겠어. 그런걸로 쳐줄게.”
직접적으로 칭찬 듣는거 낯부끄럽다고.
그것도 모브나 시민이 아닌, 원작 속 주역들에게 들으니 뭔가 인정받은거 같고 그래서 간질거리는 느낌.
제발 그만해다오…….
나는 하레와 마키가 계속해서 놀리는 것을 애써 무시하며 어떻게든 다음 주제로 넘어가려고 했다.
갑자기 하레가 요상한 주제를 불쑥 꺼내지 않았다면.
“그래서 말인데, 나나시.”
“네, 네?”
“앞으로도 우리랑 함께 협력할거잖아, 그치?”
“……그, 쵸?”
왜 갑자기 그런 이야기를.
나는 살짝 불안해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나는 그녀가 꺼낸 말을 듣고는 멍청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 우리 같이 방송해보지 않을래?”
“……예?”
“빌런 퇴치 방송. 전처럼 비공식이 아닌, 공식적으로 후원을 받아보자는 이야기야.”
“그게 무슨…….”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그녀의 주장에 저절로 부정적인 방향으로 생각이 쏠리는 것을 느꼈다.
히어로 방송이라니. 이 무슨 괴랄한-
“돈 필요하지 않아?”
“…….”
음.
방송이라.
아무래도 진지하게 생각을 해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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