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07
1.
[블루 아카이브]의 두 번째 메인스토리, ‘태엽감는 꽃의 파반느’는 밀레니엄을 배경으로 이루어진다.
주요 등장인물과 조연들도 밀레니엄의 인물이 대부분이며, 이야기가 전개되는 배경 또한 마찬가지로 밀레니엄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없다. 특수한 위치에 속한 선생을 제외하면 밀레니엄 외부의 도움이 일절 없다시피 해도 될 정도로 말이다.
왜냐고?
이는 키보토스의 삼대 학원이라 불리우며, 중립적인 위치를 고수하는 밀레니엄의 특성 중 하나다. 중립이란, 다른 말로는 그 누구와도 친하지 않다고도 표현할 수 있는 법이었으니.
또한, 똑똑하고 지혜로운 이들이 모여드는 집단인 만큼 내부에서 발생한 일을 외부적인 도움을 받아 해결할 필요는 없다는 나름의 권위적인 시선도 섞여있으리라는 것이 내 판단이다.
밀레니엄이 중립을 표방하기에 세 학원 중 가장 깨끗하지 않냐고 할 수 있겠지만, 어느 학원이든 완벽한 순백을 지닐 수는 없는 법이었으니.
원작에선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 세계를 현실로 삼아 지켜본 나는 확신할 수 있다.
밀레니엄 사이언스 스쿨은, 잘못 틀어지면 빌런이 될 수 있는 천재들이 모여있는 군상지(群像地)라고.
이 말이 무엇이냐?
만일, 밀레니엄에서 내부적인 다툼이 벌어진다면 십중팔구 지능전의 양상으로 벌어질 것이고.
천재의 범주에 속해있지 않은 나로서는 그 분쟁 속에서 쉬이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이다.
당장만 해도 정체를 숨기는 것만으로 외줄타기를 하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데, 이번 메인스토리처럼 큰 소란에 뛰어들게 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글쎄다. 쉽게 예측할 수는 없다.
허나 내게 긍정적인 상황은 아니게 되리라.
어쩌면 밀레니엄을 무대로 한 메인스토리, 그 두 번째 장의 시기를 앞당기는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혹은, 리오가 내 정체를 어렴풋이 알아채며 나를 더욱 압박해올지도 모른다.
…….
이런 생각도 가능하리라.
어쩌면, 내가 이번 스토리에서 이득을 취할 수도 있지 않을까?
분쟁의 양상이 지능전으로 흘러간다면, 그 부분에서 내가 이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나에게는 많은 동료가 있다.
좋은 인연을 만나, 옳은 일을 행할 수 있게 됐다.
그러니 이번 일도 마찬가지로 그 연장선이리라.
이들의 힘을 모아 내가 역으로 리오를.
빅시스터를 역으로 공격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도달한 순간, 나는 자신보다 더 지혜로운 이들에게 조언을 얻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너무 위험한 도박이에요. 저희 모두가 위기에 빠질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도전이라구요. 누구 한 명이 실수라도 한다면 모든게 무너질거에요. 리오는 그런 여자에요. 자신을 공격한 적은 절대로 살려두지 않는다. 그런 존재가 바로 빅시스터에요.”
“알고 있습니다.”
리오 회장은 확실히 초이성적인 존재다.
자신의 신념에 방해가 되거나, 필요에 있어서 제거해야 한다고 판단한다면 그것을 과감하게 실행한다.
세계가 멸망할 위기에 처했다면 그것을 방어할 수 있다면 온갖 불법을 저질러서라도 방어하고자 한다.
이런 점에서 그녀는 지도자이자 수호자의 역할에 어울리지만, 동시에 폭군이 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히마리가 우려하는 점은, 이러한 폭군을 건드렸을 순간 리오가 우리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
그러나.
“‘실수’가 있다면, 말이죠.”
“…….”
[…….]
“여러분들이 그런 실수를 할 리가 없잖아요.”
내 과감한 말에 휠체어에 앉은 히마리와 홀로그램으로 회의에 참석한 하레가 침묵했다.
하레의 홀로그램 옆엔 같은 베리타스의 치히로와 엔지니어부의 우타하, 히비키가 동일하게 침묵한 채로 고민에 빠져있었다.
무언의 동의인 셈이다.
“지금 당장 결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이번 회의에서 의견을 묻고 싶었을 뿐이니까요.”
내 말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디펜더스 멤버들.
리오가 본격적으로 경계와 감시를 늘린 시점, 우리는 이렇게 그 누구도 알아챌 수 없도록 은밀하게 회의를 나누곤 했다.
현실에서의 만남이 어렵다면 원격으로 소통하면 된다는 베리타스와 히마리의 주장으로 만들어진 ‘디펜더스’의 정기 회의인 셈이다.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첫 침묵을 깬 사람은 베리타스의 하레였다.
[리오 회장- 빅시스터는 확실히 위험해. 지금은 우리의 행동을 감시하는 것으로 그치겠지만, 나중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 다들 알다시피 그녀는 자신의 적수가 될 인물을 남기지않는 존재. 언젠가 우리를 공격할 거라고 생각해.]
“그러니 우리가 먼저 공격을 하자, 이 말인가요?”
[그것보단 정보를 얻어놓자는 말이지. 히이로의 말의 요지도 리오에게 타격을 입히자기보단 우리가 이득을 취할 방법을 찾고 싶다는 내용이었으니.]
나는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심 공격을 먹이고 싶긴 했으나, 굳이 공격하지 않고 이득만 취해도 상관없긴 했다.
뒤이어 말을 꺼낸 사람은 베리타스의 치히로였다.
[확실히 우리는 리오 회장에 대한 정보가 현저히 부족해. 그런 점에서 이번 제안은 확실히 흥미롭지. 내 판단에도 리오 회장은 언젠가 확실하게 선을 넘을 것처럼 보이거든.]
“…히이로도 저번에 그렇게 말했었죠? 리오, 그 여자는 나중에 어떤 형태로든 큰 일을 벌일 것이라고.”
“네. 맞아요.”
“멸망을 막기 위해서, 였나요. 후우…….”
히마리를 비롯한 디펜더스 멤버들에겐 사전에 내게 미래에 대한 기억이 ‘일부’ 존재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려놓았기에 중간에 의문을 표하는 이는 없었다.
그저, 내 기억이 이번 제안의 근거가 되었음을 다시금 깨닫곤 깊은 고민에 빠질 뿐.
어려운 결정이긴 했다.
이는 어떻게보면 반역모의라 볼 수 있었기에.
학원의 학생회장은 한 나라의 대통령과 비슷한 포지션에 속해있다. 그런 이에게 타격을 줄 계획을 세운다? 삼자의 시선에선 쿠데타로 보이기도 할 터.
하지만…….
“언젠가, 저희는 반드시 리오 회장과 부딪히게 될 겁니다. 이건 필연적인 일이에요.”
“……그건.”
[하. 차마 부정할 수 없네.]
[…얼마 전 일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지.]
우타하가 작게 중얼거렸다.
아마 토키가 나를 급습한 것을 말하는 것이리라.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정의의 반댓말은 ‘악’이 아니라, ‘또 다른 정의’라고도 하니까요.”
“오. 굉장히, 멋진 말이네요……?”
[무슨 명언제조기셔? 이러니까 팬들이 환장하지.]
“…아니, 그냥 한 말이니 넘어갑시다. 좀.”
아무튼.
어쩌면, 리오도 직감했으리라.
그녀의 가장 큰 적수는 밀레니엄 학생도, 선생도 아닌, 나라는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우리가 걷는 길이 다른 이상, 충돌은 피할 수 없다.’
미래를 알지 못해도, 예지가 없더라도.
이는 우리 모두가 ‘직감’하고 있는 일이다.
리오가 걷는 길은 분명히 정의로 포장되어 있지만, 우리와는 다른 길임을. 그 길 끝에서 반드시 우리와 격돌하게 될 날이 올 것임을.
“며칠의 여유는 있을 거에요. 그때까지 고민해주세요. 이성적으로, 그리고 지혜롭게.”
나 자신조차 이 선택을 확신할 수 없다.
그저, 하나의 방법론을 떠올렸을 뿐이니까.
그러니 나보다 똑똑하고 이성적이며 지혜로운 동료들이 대신 고민해줘야 할 것이다.
[……나쁜 제안은 아닌데, 왜? 네가 결정하면 애들 다 따라갈거 같은데.]
“전 현장직이니까요. 사무까지는 좀.”
[그냥 귀찮은거 아니고……?]
“하하하. 설마요.”
[…….]
[…….]
이걸 들키네.
뭐, 이런 이유뿐만은 아니다.
정의로운 자는 지혜로워야 한다.
아둔한 이가 정의를 말하는 것은 그저 정의에 중독된 미치광이나 다를 바 없다.
용기만 낸다고 모든 일을 해결할 수는 없으니까.
그러니 때로는 한발 멀리서 지켜보는 이가 필요하다.
모든걸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는 나의 시야가 좁아져있음을 확신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물론, 이런 식으로 포장해서 말하진 않았지만.
“해줘. 히이로 그런거 몰라.”
“푸흣. 아이 참. 알겠어요. 해드릴게요.”
[…히마리 선배, 히이로한테 너무 무른거 아니야?]
[인정. 이러다 간도 쓸개도 다 주겠는데.]
[아오그냥 사귀라고 이것들아.]
나는 다른 이들의 불평을 가볍게 무시하곤 오늘의 회의를 빠르게 마무리지었다.
2.
시끌거리던 디펜더스 회의가 마무리된 직후.
적막으로 가득 찬 초현상특무부 부실에는 나와 히마리, 그리고 주변 바닥에서 반라 상태로 자고 있는 에이미가 보였다.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해져서 ‘집’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이 들어버린 공간.
그리고 그곳에서 함께하는 사랑하는 동료들.
불과 몇 달이 지났을 뿐인데, 서로가 없으면 어색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사이가 가까워진 우리였다.
히마리도, 에이미도.
모두 소중한 나의 친구이자, 동료였다.
가령, 가족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처음에는 그저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로 여겼을 뿐이지만, 지금은 진심으로 사랑하는 현실의 사람으로 여길 정도로 내 심경에 변화가 찾아온 상황.
간단히 말해, 내가 이 세상을 점차 ‘현실’로 여기게 되어가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금까지 망상으로 여긴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어딘가 거리감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니.
“뭔가,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지키고 싶은 소중한 것들이 늘어나는 기분이에요.”
히마리는 작게 미소지으며 나를 보았다.
마치 ‘그런가요?’ 하는 듯한 미소였다.
“제가 모든걸 다 지켜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뭔가를 지키고 싶다는 마음이 남아있다는건… 굉장히 좋은 기분이네요. 인간성, 책임, 의무, 이런 것들이 아마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감정일지도요.”
간단히 말해,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이 감정이 ‘살아있다’라는 감정이라는 말이다.
이 세계에서의 나날은 투쟁의 역사였고, 생존의 역사이기도 했고, 동시에 고뇌와 고통의 역사였다.
그 모든 파도들을 이겨내고, 막아내며 이곳까지 도달한 지금. 주변을 둘러보니 남아있는건 결국 사람이었고, 내가 이루고자 하는 원대한 목표였다.
“그래서 전에 그렇게까지 고민했나봐요.”
“게임개발부 아이들을 저버리고 싶지 않았나요?”
“아마도요. 그 아이들을 외면한다는 선택지를 머릿속으로 떠올릴 때마다 마음 속 삼각형이 저를 긁어대더라고요.”
이는 다른 말로는 죄책감이고, 양심의 울부짖음이다.
나 자신을 위해 타인을 외면하는 길.
모든 불의와 각박함은 이런 ‘외면’에서 시작된다.
평화와 질서를 추구하는 영웅이 택하지 않을 길.
그렇기에 나는 그 선택지를 앞에 두고 고통스러워했다. 크게 고민하였기에, 예언자를 찾고자 했다.
나의 선택이 옳음을 증명하고 싶었다.
“결국, 사람이 전부네요. 제가 저 자신으로 남는 것도, 제가 이 일을 하게 된 것도 전부.”
“후후. 그렇다면 히이로는 옳은 선택을 내린 거에요.”
“그런거겠죠?”
이성, 지혜, 합리, 효율, 완벽.
밀레니엄에서 중시하는 대표적인 가치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불필요한 가치들이었다.
모든 사건은 합리적으로, 이성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악행을 저지르고, 불법을 행하는 이는 그 반대의 가치를 섬기며 움직이는 이들이다.
그런 이들에게 합리와 이성을 바랄 수는 없다.
때로는 감정으로 해결해야만 하는 일도 있는 법.
나는 그 사실을 최근에 들어서 깨달았다.
“역시, 강한 힘과 원대한 꿈만으로는 완벽한 히어로가 될 수는 없는 법이네요.”
“굳이 완벽함을 추구할 필요가 있나요? 저는 지금의 히이로도 괜찮다고 생각한답니다?”
“고마워요, 선배. 하지만…….”
히어로는 언제나 성장하는 존재여야만 한다.
먼 미래의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 나는 지금 시점에서 머물러있어서는 안되었다.
보다 더 강인하게, 보다 더 완벽하게.
“제가 나아가고자 하는 길의 종착지는, 정말로 머나먼 곳에 있으니까요.”
내가 아이언맨을 사랑했던 이유가 무엇인가.
그는 이성적이면서, 합리적이었지만, 그 누구보다 영웅이 해야할 일을 아는 존재였다.
인간인 그는 완벽하지 않았지만, 영웅인 그는 어떤 누구보다도 ‘완벽에 가까운’ 존재였다.
나 또한 그를 동경했기에 같은 길을 걷고자 한다.
그리고 그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밀레니엄이라고 생각하기에.
“최고의 게임을 만드는 방법, 그런건 없을 겁니다. 최고에 다다르는 방법이 정해져있을 리 없으니까요.”
“〈G.Bible〉 말이죠?”
“하지만, 그 과정은 정해져있을 수 있죠.”
게임을 사랑하라.
이것이 ‘G.Bible’에 적혀있던 갓겜을 만드는 방법.
이런 이치는 다른 것에도 적용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내가 하는 히어로 활동.
가게를 운영하는 자영업이라던가.
문학을 집필하는 소설작가.
웹툰을 그리는 웹툰작가에 이르기까지.
무언가를 사랑하고, 즐긴다는 것은 그만큼 강력한 힘으로 작용하는 법이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말처럼.
“그 과정이 고통스러우면 안되겠죠.”
“…….”
“이 모든 일들을 즐겁게 느낄 수 있다면, 그리고 게임을 만드는 과정 또한 마찬가지라면.”
“…….”
“그 아이들의 문제점을 조금씩 개선시키는 것만으로 갓겜에 가까워질 수 있겠죠.”
이것이 내가 낸 결론이었다.
이번 메인스토리에서의 방법론이었다.
내 선언에 히마리는 눈동자를 동그랗게 뜨며 어딘가 뺨이 붉어진 채로 날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히마리 선배?”
“아, 하하. 정말… 당신은…….”
히마리는 말을 고르는 것처럼 입을 열고 닫기를 반복하다가 이내 툭 내뱉었다.
“멋져요, 히이로. 네. 이러니 제가 히이로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거 아니겠어요?”
“…예?”
“후후. 이런 부분에서는 또 눈치가 없는 점도 매력 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죠.”
전부터 생각한건데, 히마리는 정말 왠지 모르겠는데 나를 너무 좋아한다. 이걸 모를 수는 없지.
하지만… 그 ‘좋아함’이 단순히 친애의 감정을 넘은 무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라서 그렇지.
“후후후.”
나를 바라보며 미소 짓는 히마리의 저 눈빛이 어딘가 와카모를 닮은 것은 내 착각일까?
…….
나는 애써 무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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